카테고리 보관물: Africa Insight

Africa를 방문하며 느낀 생각과 알게된 정보들의 정리정돈 공간

(연재) 아프리카 101: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현지화 전략의 필요성 (제2회 아프리카 미래전략센터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아프리카 미래 전략 센터 (Korea Africa Center)는 아프리카에 대한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2015년 1월에 외교부 산하에 설립된 기관이다.

쉽게 말하자면, 아프리카 관련 Think Tank 이다.

아프리카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에세이 공모전을 2015년도에 개최하였고 2016년 2회 공모전에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아프리카 내 스타트업들과 그들의 성공 사례 주제를 선택하여 참가하였다.

주제는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현지화 전략(Glocalization)의 필요성 이다.

아프리카 미래 전략 센터의 홈페이지 내 현재까지의 공모전 수상작을 게시하여 관심 있는 누구나 쉽게 다운 받아서 읽어 볼 수 있다.

(연재) 아프리카 101: 스타트업을 통한 아프리카의 혁신, 발전 그리고 미래 (제3회 아프리카 미래전략센터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아프리카 미래 전략 센터 (Korea Africa Center)는 아프리카에 대한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2015년 1월에 외교부 산하에 설립된 기관이다.

쉽게 말하자면, 아프리카 관련 Think Tank 이다.

아프리카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에세이 공모전을 2015년도에 개최하였고 2016년 2회 공모전에 최우수상 수상을 더불어 2017년 3회 공모전에서도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아프리카 내 스타트업들과 그들의 성공 사례 주제를 선택하여 참가하였다.

주제는 스타트업을 통한 아프리카의 혁신, 발전 그리고 미래 이다.

작년도 최우수상 수상을 했었기에, 올해도 역시 수상이 목표여서 분류 방법과 소개 구축 및 선정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였다. 우리는 1차 (농업), 2차 (인프라), 3차 (서비스) 산업의 분류에 아프리카 현지인들의 아프리카를 위한 스타트업 활동과 성공사례를 조명하였다.

아프리카 미래 전략 센터의 홈페이지 내 현재까지의 공모전 수상작을 게시하여 관심 있는 누구나 쉽게 다운 받아서 읽어 볼 수 있다.

(연재) 아프리카 101: 나이지리아 Igbo 부족과 Hero 맥주의 연결고리

참고의 글: 연재 형식인 ‘아프리카의 가능성’과 별도로 ‘아프리카 101’ 연재을 시작합니다. 영어권에서 101은 기초 단계를 의미합니다. 대학교에서 101 수업은 주로 신입생들이 수강하는 기초 단계 수준의 수업니다. 예를 들어 Finance 101의 경우 재무학 기초 수업이고 이후 단계별 200, 300, 400 단위의 난위도가 높은 전공 수업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프리카 101’ 연재 글을 통해 인문학 관점에서 짧고 쉬운 형식의 아프리카 이야기를 담을 계획입니다. 아프리카에 가보지 못하더라도 ‘아프리카 101’연재 글을 통해 54개국의 다양한 아프리카 모습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연재) 아프리카 101: 나이지리아 Igbo 부족과 Hero 맥주의 연결고리

만약 소비재 산업에 종사하는 해외영업 사원이 아프리카에 진출해야 한다고 하면 어느 국가가 가장 중요할까? 54개국 모두 다 진출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자본이 요구 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제품을 구입해 줄 넉넉한 인구와 경제규모와 성장이 뒷받침 되는 시장에 진출해야 하지 않을까? 아프리카 진출을 염두하는 전 산업의 기업들에게 나이지리아는 1순위일 것이다. 1억 7천만 명이 넘는 인구에 남아공과 매년 GDP 규모 1위 자리를 경쟁하는 곳인만큼 아프리카 진출에 나이지리아를 제외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시장 진출이 성공을 보장 하지는 않는다. 같은 대륙의 남아공 기업들도 나이지리아 진출에 실패 후 본국으로 철수 하는 사례가 많다. 250개가 넘는 다양한 부족과 언어 그리고 높은 자원 수출 의존도에 따른 경제 성장 불안정성과 환율 문제로 많은 리스크를 품고 있는 곳이 나이지리아이다. 리스크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지의 문화와 사정을 고려하는 유연함이 중요하다. 이번 연재에서는 글로벌 맥주 기업 SABMiller에서 선보인 HERO 맥주의 성공적인 진출 배경이 되는 나이지리아 대표 부족 Igbo 부족과의 연결고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Igbo족에 대해 알아보자.

<Igbo and Republic of Biafra>

나이지리아에는 정말 많은 부족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대표 부족들로는 Hausa, Yoruba, Igbo족이 있다. Igbo족은 전체 인구의 20%이상을 (약 4,000만 명) 차지한다. (Yoruba족의 음악은 앞서 소개한 Afrobeat 음악 장르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Hausa족은 북쪽에, Igbo족은 남동부, Yoruba족은 남서부에 대다수 거주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출장을 갔을 때 택시를 타고 미팅 업체를 만나러 가는 도중 기사가 해준 얘기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나이지리아에서 무역 포함 상업 분야에는 Igbo족이 주로 종사하고 있고 그들과 협상하기 쉽지 않으니 오늘 만나는 파트너사가 어느 부족 출신인지 아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그들에게는 뛰어난 사업 감각 (business acumen)이 있다는 것을 덮붙였다. 마치 동부 아프리카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도 이민 후손들과 서부 아프리카의 레바논 이민자들이 떠 올랐다. 매체를 찾아봐도 Igbo족이 상업 분야를 주도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대부분 그들의 사업가 마인드(entrepreneurship) 등 성향을 공통적으로 말하지만 타 부족 대비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납득 되는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나이지리아 원유개발 지역이 그들이 거주하는 남동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돈이 모이는 곳에 기회도 많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나이지리아 내 유전 지역 대부분이 남쪽에 분포해 있다.)

또한, 거주 지역이 해안과 밀접해 있기에 예전부터 무역거래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그들만의 커뮤니티 안에서 부족원들을 지원함으로써 Igbo족들이 대체로 상업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짐작해본다.여러 자료를 찾아보다 그럴듯 한 해석이 담긴 글을 발견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Ibgo족의 가면 축제를 정리한 문화재청 블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덧붙여 있다.

“이보족은 다른 민족에 비해 중앙집권적 정치체계를 형성하지 않았다. 주로 농업에 종사했지만 영국의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기독교와 서구식 교육을 수용하고 일찍부터 상업적 재능을 발휘했다. 이보족은 나이지리아의 다른 대도시로 이주하여 지역마다 상당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Igbo(이보)족 소개시 Biafra(비아프라)와 비아프라 독립전쟁 소개를 빠트릴 수 없다. Biafra 공화국은 과거 약 3년 정도만 존재하였고 현재는 아프리카 지도에서 찾아 볼수 없는 국가이었다. SABMiller에서 나이지리아 진출을 위해 만든 HERO 맥주에는 Biafra 역사가 담겨 있다. Biafra 국가 설립과 독립전쟁은 현재 나이지리아의 복잡 다양한 부족 구성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연합 정부를 설립하였으나 대표 3개 부족들은 각자가 권력을 독점하고 싶어 했다. Igbo족이 먼저 선점하였으나 최대 부족인 Hausa(하우사)족이1966년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손에 넣었다. (Hausa족은 대부분 무슬림으로 구성되어 있고 Igbo족과 Yoruba족은 영국 식민지 시절 대부분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종교적 차이가 많은 희생을 야기하는 것을 중동 정세를 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같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파 갈등으로 빚어진 분쟁은 아직도 현재형이다. 나이지라는 200여개의 다양한 종족이 존재하기에 복잡 다양한 종족간 대립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었다. (영국의 식민 통치 시절 기독교로 개종한 Igbo와 Yoruba족이 식민통치에 협력하며 무슬림인 Hausa족을 핍박하였던 부분을 고려하면 오래 전부터 대립은 발생 되었다.)

문화적, 경제적 및 종교적 불평등 안에 감정을 골을 깊어졌고 이에 반발한 Igbo족은 남동부 3개주를 묶어 1967년 5월 30일에 분리독립을 선언하며 Biafra를 건국하였다. Biafra는 남부해안의 만을 일컫는 Bight of Biafra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과 소련의 나이지리아 정부군(Hausa 정권) 지원에 의해 Biafra는 독립 선언 3년 만에 항복하였다. 전쟁 중에도 양쪽의 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정부의 경제 봉쇄로 인해 많은 난민들이 굶주림에 죽어 나갔다. 3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많은 어린 아이들이 기아에 목숨을 잃었다.

(종군기자였던 돈 매컬린(Don McCullin)은 900여명의 난민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캠프을 방문한 뒤 9세의 알비노 아이를 촬영하게 된다. 이 사진을 통해 국제사회가 Biafra 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변에 들어 본적이 있는 ‘국경 없는 의사회’ (Doctors without borders)의 첫 활동지가 Biafra 전장이었다. 당시 처참한 환경에서 난민 구조에 힘쓴 의사들이 전쟁 종결 이후 1971년 파리에서 설립한 NGO단체이다.

<Beer Competition and SABMiller’s Hero>

작년 이 시기에만 해도 아프리카에 진출한 대표적인 맥주 회사는 크게 5개로 나뉘었다. Castle로 유명한 남아공에서 시작된 SABMiller, 흑맥주 Guiness를 판매하는 Diageo, 네덜란드의 대표 맥주 Heineken, 프랑스의 Castel Group 그리고 Budweiser와 Corona로 유명한 벨기에 AB InBev이다. 하지만 작년 10월 AB InBev사에서 SABMiller를 100조 원에 인수한 이후 경쟁 구도는 실제로 4파전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거점 확보와 판매 확대를 위해 직접 맥주 공장을 설립하는 뉴스를 쉽게 찾아 볼수 있다. 예로 세계 2위 규모의 맥주 회사인 Heineken은 서부 아프리카 경제 중심지 중 하나인 코트디부아르에 2,000억 원을 투자하여 맥주 양조 공장을 설립하였다. 불어권 국가답게 코트디부아르에는 이미 프랑스 본사의 Castel Group 맥주 회사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Heineken측에서 내놓은 전략은 ‘현지 생산과 함께 제품 현지화 전략’이다. 현지인들과 유대 관계를 만들어 초기에 시장 진출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가 Ivoire이다. Cote d’Ivoire에서 Ivoire를 브랜드명으로 사용하였고 영어로 상아해변을 뜻하는 Ivory Coast 의미의 연장선으로 코끼리를 로고화하였다.

(Heineken의 코트디부아르 진출을 위해 만든 현지 라거 맥주 브랜드 Ivoire)

대표적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예이다. 큰 틀에서는 글로벌을 지향하되, 신규 시장으로 진출시 철저히 현지화를 고려하는 것을 의미 한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은 소니의 창업 멤버이자 회장인 모리타 아키오가 주창한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을 혼합하는 기업 원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지역별 문화, 여건, 생활 양식을 고려하지 않고 현지에서 성공을 이끌 수 없다. 제품, 서비스, 유통 등 모든 산업에서도 현지화를 반영한 제품 개발 및 문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시대이다.)

아프리카에 방문하면 국가별로 다양한 맥주들을 볼 수 있다. 국가마다 다양한 맥주를 마시는 것은 아프리카 방문의 또 다른 재미이다. 사실 앞서 본 Heineken의 코트디부아르 진출 전략처럼 국가별 다양한 맥주 브랜드들은 몇몇의 글로벌 맥주 기업들이 국가별로 진출하기 위한 현지화 전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예로 SABMiller사측의 탄자니아 맥주는 Killamanjaro 산 이름에서 따온 Killimanjaro 맥주를 판매하고 있고, 잠비아에서는 빅토리아 폭포의 현지 이름인 Mosi를 사용하고 있으며, 우간다에서는 Nile River (나일강)의 Nile을 브랜드명으로 활용하여 현지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각 국가마다 SABMiller사 소유의 양조 공장에서 현지화 브랜드 맥주가 생산되어 유통되고 있다.

(탄자니아의 대표 맥주 Kilimanjaro)
(우간다의 대표 맥주 Nile Special)

나이지리아의 남동부 지역에 위치한 Onitsha 주 도심 안 스포츠 펍(Pub)에서는 “Oh Mpa.”를 외치며 바텐더에게 맥주를 주문하는 소리가 낯설지 않다. Hero 맥주의 또 다른 이름이다. Igbo족 언어로 ‘Oh Mpa’는 Oh Father를 의미 한다. 여기서 Father는 Igbo족만의 독립국가 설립을 위해 과거 Biafra 공화국을 선포한 이보족 출신의 추쿠에메카 오두메구 오주쿠(Chukwuemeka Odumegwu Ojukwu) 장군을 일컫는다. 비록 Biafra 독립을 위한 내전은 실패하였지만 Igbo족에게 이제는 고인이 된 오주쿠(Ojukwu) 장군은 영웅 (Hero)으로 남아 있다. Biafra 국기 안에 담겨 있는 반쪽의 노랑색의 태양을 HERO 맥주 로고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Hero 맥주를 즐겨 마시는 이들은 과거 Biafra 독립 전쟁을 겪은 세대뿐만이 아니다. 세대를 거치며 전해들은 젊은 세대들도 Hero 맥주를 즐긴다.

(SABMiller사의 나이지리아 현지 맥주 브랜드 HERO)

(Biafra 국기 안에 담겨진 노랑색의 작열하는 모습의 태양은 그들의 눈부신 미래를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동그란 형태가 아닌 반쪽만을 표현한 배경에는 과거 Biafra 독립 전쟁의 실패를 나타 낸다. 아마도 Igbo족은 감춰진 나머지 반쪽 부분이 떠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Hero 맥주의 로고에서 보이듯, Igbo족의 민족주의 모습이 강렬하게 담겨 있고 그들이 이 맥주를 즐겨마시는 이유이다. SABMiller측에서는 Hero 맥주 탄생 배경에는 그 어떤 정치적 및 역사적 의미가 없다고 한다. 현지의 소비자 공감을 얻고자 전략적으로 만든 브랜드이다. 가격도 기존 경쟁자들인 Heineken과 Guiness 등 Larger 맥주에 비해 40% 이상 저렴하다고 한다. 여기에 맛도 현지의 성향을 고려하였다. 맥주의 맛과 향을 좌우하는 홉 (hop) 함량을 유럽산 라거 맥주 대비 현저히 줄였다. 쓴맛은 덜하고 더운 날씨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넘김이 경쟁력을 더했다. Igbo족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측면을 잘 고려하여 만든 Hero 맥주는 사실상 외국 맥주회사가 만든 브랜드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본인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나타내는 ‘현지 제품’으로 받아들인다. 브랜드을 향한 애정과 충성심(Loyalty)이 상당하다. Igbo족과 연계된 맥주 판매로 나이지리아의 다양한 부족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진출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나이지리아 내 Igbo족의 수는 약 4천 만 명으로 추청된다. 이웃 국가 가나의 인구가 3천만 명 미만이다. Hero 성장세를 견제하기 위해 나이지리아 현지 맥주 회사인 Nigeria Breweries PLC(Heineken이 대주주이다.)의 불공정한 행동은 소비자들로 부터 오히려 빈축과 불매운동을 일으켰다. 별도의 예산을 책정하여 맥주 유통 도소매상인들에게 Hero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12개 박스의 Star 맥주를 인센티브 (Incentive)로 제공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NB PLC의 대표 맥주인 Star 맥주 판매가 해당 지역에서 급감하였다.

(나이지리아 대표 맥주 Star)

SABMiller는 2009년 나이지리아 Port Harcourt 지역의 현지 맥주공장 인수를 시작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Ilesha지역 맥주 공장을 인수하였고 Onisha 지역에는 2012년 맥주 양조 공장 설립에 1,000 억 원 이상을 투자하였다. 경쟁사인 Heineken과 Diageo에 비하면 늦은 진입이었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경제 수도 라고스(Lagos) 진출을 전략적으로 피했다. 오히려 지역별로 철저하게 ‘현지화’를 모색하였다. 그 결과로 탄생된 것이 Hero 맥주이다. 과연 SABMiller사측이 초기 진출 부터 대표 자사 제품인 남아공 맥주 Castle을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생산하여 판매하였다면 지금처럼 성공적인 진입을 할 수 있었을까? 남아공 기업의 진출 실패 사례로 다뤄졌을 것이다. 아프리카로의 진출은 같은 대륙에 있는 타 국가의 기업들에게도 어려운 난제이다. 호텔과 카지노를 운영하는 썬 인터내셔널(Sun International), 소매상인 울워스(Woolworths), 식품 생산회사인 타이거(Tiger) 등 나이지리아에 많은 비용을 투자했던 상당수의 남아공 기업들이 나이지리아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하였다. 글로벌 시대에 이제 세계는 하나의 무대로 통합되고 있지만 본국에서의 성공 방정식이 이웃 국가에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세계 최대 맥주 기업인 AB InBev(버드와이저와 코로나 등 소유)가 아프리카 및 남미 등 신흥시장 (Emerging Market)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SABMiller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은 글로벌 경쟁시대에 당연한 선택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최대한 레버리지(leverage)를 하겠다는 것이다. SABMiller사는 뒤늦게 나이지리아에 진출했지만 HERO맥주의 성장으로 성공적인 진출로 평가 되고 있다. 그들의 성공에는 현지의 문화, 역사, 심리를 고민하고 반영하여 특정 소비자층으로부터 단기간 내 선택을 이끌어 냈다. 아프리카는 참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민족과 언어 그리고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연재) 아프리카의 가능성: 5) 서부 아프리카 말리의 Bogolanfini (Mud Cloth)

아프리카 국가 중 말리 (Mali)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국제개발 업무 종사자가 아니라면 개인적인 여행과 출장을 통해 방문하기 힘든 나라이다. 이슬람주의 극단 무장 세력들의 활동 지역에 포함 되어 현재 외교부에서는 전 지역 모두 철수 권고하고 있다. 필자도 아직 말리는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말리는 가보지 못했더라도 대부분이 삶 속에서 말리의 전통 문화를 접했을 것이다.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록시땅 (L’Occitane)에서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천연 식물성 버터인 시어버터 (Shea butter)를 주 성분으로 활용한 핸드크림 제품을 선보였다. 아프리카 에디션답게, 아프리카 원산지인 모로코의 사막 장미 (desert rose), 이집트의 히비스커스 꽃 (Hibiscus Flower), 아이보리 코스트의 코코아 꽃에서 추출한 향으로 세가지 라인을 담았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제품의 포장 디자인’이다. 시어버터의 주 생산지인 서부 아프리카의 느낌을 담기 위해 말리의 고유 천연직물 염색 기법인 ‘Mud Cloth’의 눈을 사로 잡는 패턴이 모티브가 되었다. 제품의 포장 디자인을 유심히 살펴보자.

(Source: atissuejournal)

(Source: babyrazzi.com)

록시땅 제품의 포장 디자인은 화려한 연출이 더해졌기에, 기존의 Mud Cloth의 색상 느낌과 차이가 크다. 아래 패턴을 본 적이 있는가?

(Source: lindikister.com)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면 아래 인테리어 소품 사진을 보자.

(Source: Pinterest)

얼룩말 무늬와 같은 검은 바탕에 하얀 색의 아름다운 기하학 패턴이 담긴 모습을 본 적이 있지 않는가? 이 디자인은 과거 12세기 부터 시작된 말리인들이 진흙(mud)을 활용한 염색 기법을 통해 탄생 되었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볼 때 낯설고 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프리카의 고유 문화들이 대륙을 넘어 우리의 일생활 속에 가까이 와 있다. 그들의 mud cloth 패턴 디자인이 담긴 인테리어 소품들을 (식탁보, 베개, 담요 등) 세계 곳곳의 생활용품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말리의 Mud Cloth에 대해 알아보자.

<말리>

우선 말리 공화국(Republic of Mali)에 대해 알아보자. 말리는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 국가로 알제리, 모리타니아, 니제르, 세네갈, 기니아, 부르키나 파소 등에 둘러 쌓여 있다. 완전한 내륙 국가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한반도의 5배 정도인 국토의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에 속한다. 수도인 바마코 (Bamako)가 왜 기니 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간다. 인구 수는 약 1,700만 명이고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Bambara, Fulani, Sarakote, Senufo 등 다양한 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중 다수를 차지하는 부족이 Bambara이다. 이번에 소개할 Mud Cloth 전통이 Bambara 부족의 문화 유산이다.

(출처: biomesaharadesert.com)

(Source: 두산백과)

말리를 떠올리는 대표적인 인물은 역사상 세계 최고 부자로 뽑힌 황금왕 만사 무사 (Mansa Musa)이다. 13세기에 출연한 말리 왕국은 이전에 번성 했던 가나 왕국처럼 금과 소금 무역을 부를 축적했다. 만사 무사가 통치하던 시절, 말리는 전 세계 금 생산의 70%을 차지할 정도로 왕국의 최전성기를 보냈다. 그가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시 약 400조원 이상의 가치로 추산된다고 한다. 남쪽 지역의 황금과 더불어 북쪽지역에는 소금 산맥이 있었다. 북쪽에 위치한 도시 ‘팀북투'(Timbuktu)를 중심으로  인근 국가들과 황금과 소금 거래가 활발 하였다. 당시 만사 무사는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팀북투에 위치한 왕궁을 중심으로 사원과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도서관 건립에 아낌없이 지원하였다. 

이 지역에는 도서관 건립과 함께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학자들과 연구들로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고 황금 보다는 오히려 학문을 위한 책을 더욱 귀하게 여겼다. 당시 말리의 팀북투는 지금의 파리와 뉴욕과 같은 세계적인 문화도시이었다. 소금은 북쪽에서 오고 황금은 남쪽에서 오지만, 신의 복음과 지혜의 보물은 팀북투에서 온다는 얘기가 전해지던 시절, 말리는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번창을 누렸다.

(중세 유럽에 만들어진 카탈로니아 지도에 표시된 만사무사와 그의 손 위에 올려진 황금)

아래 TED에 소개된 말리 왕국의 만사 무사 영상 자료를 보면 기록을 통해 전해진 당시 왕국의 번영과 그의 부의 규모를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다.

말리를 대표하는 다른 하나는 젠베 모스크이다. 젠베 모스크는  흙을 이용해 건출하는 아도베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세계 최대의 건축물이다. 1988년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며 세계인의 관심을 이끌게 되었다. 

(Source: Wikipedia)

13세기 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되는 보수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매년 우기가 오기 전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수를 진행 한다. 이 날은 종교적인 의미도 있지만, 지역 축제와도 같아 아이에서 어른까지 주민 모두가 보수 과정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 BBC 영상을 참고 하자.

<Bogolan or Bogolanfini>

말리의 Bambara 부족어로 Mud Cloth를 Bogolanfini로 불린다. Bogolanfini의 Bogo는 Earth 또는 Mud를 의미하며, lan은 with를, fini는 Cloth를 의미 한다. 즉 Mud Cloth를 뜻한다. Mud Cloth는 말리 Bambara족에 의해 시작된 직물 염색 기법이다.  철분 함량이 풍분한 진흙으로 염색이 된 후 하얀 직물 천에는 검은색이 발현되고 주변의 작물을 통해 얻은 천연색소를 이용하여 다양한 색상을 표현 한다.

Mud Cloth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면 직물이 준비가 되면 Galama 나무 잎을 담군 물에 직물을 흠뻑 젖게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나무 잎의 천연 색소로 인해 직물은 겨자색으로 염색이 된다. 다음으로는 오랜 시간 동안 발효 과정을 거쳐 철분 함량이 높아진 진흙과 금속 또는 나뭇가지를 붓 대신 이용하여 다양한 패턴을 그려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패턴을 나타내는 부분은 진흙이 덮여진 곳이 아닌 제외된 부분이다. 진흙으로 덮여진 곳은 검은 배경으로 채워진다. 즉 배경이 덮고 남은 여백, 즉 Negative Space가 다양한 의미의 패턴을 나타낸다. (Negative Space를 통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머리 속에서 배경과 여백의 차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는 유년기 아이들의 창의성 개발에 좋은 교육 과정이 될 수 있다. Kid World Citizen에서 진행한 Mud Cloth 디자인 수업 내용을 공유한다.

진흙이 덮여진 부분이 완벽하게 마르게 되면 이후에 진흙을 씻겨낸다. 이후 진흙으로 물든 검은 바탕색이 더 진하도록 동일한 과정을 한번 더 진행한다. 마지막으로는 진흙이 덮여지지 않은 노랑색의 부분을 Soap 또는 Soda를 사용하여 표백처리하게 되면 하얀색의 공간으로 변색 된다. 검은색과 노랑색을 조합을 갖고 싶다면 표백처리를 건너 뛰면 된다. 이와 더불어, locust 나무 잎에서는 갈색 염료를, 아프리칸 grapetree 나무 껍질에서는 진한 빨강색 염료를 추출하여 디자인에 맞게 염색을 한다. 즉 Mud Cloth의 작업은 땅에서 나는 흙과 식물 그리고 하늘의 햇빛을 통해 만들어 진다. 아프리카 속 자연의 힘이 담겨져 있다.

최종물은 아래 사진과 같다.

(Source: naturalhistory.si.edu)

<Mud Cloth’s bold geometric pattern>

앞서 게재 된 레소토의 Basotho Blanket을 보면 그들의 삶에 중요시 되는 작물 또는 상징이 Blanket 디자인에 중요한 역활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가나 Asante 부족의 전통인 Adinkra 문양은 그들이 입는 직물에 포함되어 본인의 직위를 알리거나 원하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외부와의 소통의 역활을 한다. 말리 Bambara 부족에게 Mud Cloth 안에 담겨진 디자인은 단순한 패턴이 아닌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패턴 안에 담겨진 스토리가 Mud Cloth를 더욱 매력있어 보이게 한다. 부족 신화에 포함되는 동식물을 상징하는 악어 발모양에서 용감함을 상징하는 전사의 벨트 패턴 등 다양한 패턴들이 존재 한다. 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패턴에 각각의 아티스트들만의 고유 문양이 추가 되며 더욱 다양한 패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곳 싸이트에서 다양한 패턴과 그 의미를 알 수 있으니, 다음에 Mud Cloth를 보게 된다면 안에 담겨진 패턴을 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몇가지 대표적인 패턴과 그 의미를 알아 보자.

지그재그 모양의 이구아나의 팔꿈치(Elbow)는 Good Fortune 의미를 갖고 있고 마른모 형태 안 십자가 모양의 패턴은 Beutiful를 의미한다.

Turusina 문양은 협동 (Cooperation)을 의미한다.

(Source: museum.msu.edu)

아래 Mud Cloth를 보면 위에 소개된 패턴들을 찾을 수 있다.

(Source: bogolanfini.wordpress.com)

<Bogolanfini Artists>

니제르(Niger)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말리의 남부 지역에 유입되면서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된다. 세대를 거쳐가며 유지되어 온 그들만의 문화를 말리 밖으로 알린 대표 아티스트들을 알아보자.

Nakunte Diarra

Nakunte는 말리 서쪽의 Kolokani 지역 태생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Mud Cloth (Bogolanfini) Textile 아티스트이다. 기존의 패턴 이외 작가 본인이 직접 패턴을 제작한다. 위에서 보았던 Mud Cloth 패턴 그림들과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이 Nakunte의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패턴를 소개한 글의 일부분이다.

(Nakunte Diarra)

아래 작품은 미국 Washington에 있는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녀의 Mud Cloth 작품이다.

(Nakunte Diarra, 1992)

Ismael Diabate

Ismael은 말리 태생의 화가로 그의 작품은 mud cloth 염색 기술로 만들어 진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mud cloth 염색 과정처럼, 천연 염색 재료를 사용하여 면 직물에 그의 작품 세계를 펼친다. 그는 mud cloth (Bogolanfini)를 활용한 작품  활동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I use bogolanfini to draw Malians back into their own culture….to bring something new to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아래 대표적인 그의 작품을 감상해 보자.

(Ismael Diabate)

(Ismael Diabate)

(Ismael Diabate)

Chris Seydou

Chris는 말리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mud cloth 패턴을 활용하여 제작한 western style jacket과 miniskirt를 미국과 유럽 등 서구 패션계에 선보이며 유명해졌다. 말리의 Mud Cloth 전통과 디자인으로서의 가치를 서구에 알리며 인정 받도록 앞장선 개척자이다.  1970년대 Yves St. Laurent과 함께 일을 하였다. YSL는 당시 그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였다. 그의 나이 45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He worked at my side and represented the hope of African Clothes Design.”

(Chris Seydou)

Boubacar Doumia

Boubacar는 말리 태생으로 mud cloth textile design을 공부한 미술교사이자 사회적 기업 Ndomo를 운용하는 기업가이다. 그는 2004년말리의 작은 마을 Segou에 Ndomo를 설립하였다. mud cloth 문화 유산의 보존과 함께 청년들에게 기술 교육 지원을 통한 자립 확대를 위해 시작되었다. 특히 육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도제수업(apprentice program)으로 mud cloth 작업 기술을 전수하며 그들이 기술을 통해 아티스트로서, 기업가로서 성장하도록 힘쓰고 있다. 그는 사회적 기업가 지원 재단인 아쇼카 재단 (Ashoka)에 2008년도 Fellow로 선정 되었다.

(Boubacar Doumia)

<상업적 가치>

앞서 보았던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록시땅처럼 Mud Cloth의 패턴을 담은 직물은 다양한 범위에서 상업적 가치로 활용된다. Mud Cloth의 패턴이 품은 매력적인 고대 유산 공예 느낌은 실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조명되는 주 이유이다.

실내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 온라인 매체인 Apartment Therapy에서는 작년 8월 Mud Cloth 패턴을 활용한 소품을 새로운 실내 인테리어 액세서리 트렌드로 선정하였다.

(Source:Apartment Therapy)

(Source: Tigmi Trading)

(Source:designsponge)

앞서 소개된 Mud Cloth Artist이자 사회적 기업가인 Boubacar Doumia는 2015년 6월 미국 소재의 가구 구기업 Smilow Design과 NGO 단체인 Rubia와 협력하여 Mud Cloth Upholstered Chair를 선보였다. 당시의 협력은 말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교육 지원과 전통 수공품 판매 수익을 통한 현지 여성들의 영향력 (Empowerment)를 향상시키지 위한 Rubia 단체에서 Smilow에 제안하면서 시작 되었다. Smilow의 대표적인 Rail back Chair에 Boubacar가 운영하는 Ndomo에서 제작된 Mud Cloth 패턴이 입힌 쿠션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Source: Smilow Design)

인테리어 소품이외에도 Mud Cloth는 생활 속 다양한 부분에 활용되며 디자인의 가치로서 인정 받고 있다. 가나 아크라 소재의 Studio189 기업은 아프리카 아티스트들과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게 되어 만든 제품들과 브랜드를 재조명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최근 이 기업에서는 Mud Cloth 패턴을 활용한 가방을 선보였다.

(Source: Studio189)

아프리카 내 에이즈, 결핵 및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캠페인으로 2006년 미국 U2 락밴드 보컬 Bono의 주도로 RED가 설립 되었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약 5,000억 원이상 자금 유치를 이끌었다. 모금은 주로 The Global Fund의 HIV/AIDS 프로그램을 지원 한다. 자금 유치를 위한 일환으로 Red Product를 판매하고 있다. 수익의 50%는 The Global Fund로 직접 전달 되는 구조이다. 이 Red Product에는 Apple, Beats by Dr. Dre, Vespa 등 RED Campaign에 동참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기존의 제품과 디자인을 통해 Red Product Edition을 내놓는다.

여기에 2006년 Converse는 Chuck Taylor All Star 신발을 Mud Cloth 패턴을 활용하여 Red Product로 선보였다. 당시 디자인에 참여한 Giles Deacon은 Mali Mud Cloth 아티스트인 Nakunte Diarra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Source: highsnobiety)

세네갈 소재의 패션 기업인 Nio Far도 mud cloth pattern을 활용한 신발 Ndema 라인을 선보였다. Ndema의 뜻은 Comfort를 의미한다. 

(Source: Nio Far)

Reebok에서는 여성용 Instapump Fury 모델 중 Africa Pack을 선보였다. 디자인에 포함된 패턴은 리복의 제품 설명에 나와있듯, Mali Mud Cloth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였다.

(Source: Reebok)

 랄프로렌 블루라벨에서는 Mali Mud Cloth Print 디자인을 입힌 여성 수영복을 선보였다.

(Source:Bloomingdales)

이외에도 Chris Seydou가 mali mud cloth의 디자인을 80년대 서구 패션계로 선보이면서 이후 소위 명품이라 불리우는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도 mud cloth를 활용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Givenchy, Spring 2007)

(Oscar de la Renta, Spring 2008)

(Donna Karan, Spring 2014)

<마무리>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연쇄 테러가 발생한 1달 후, 말리 수도 바마코에서는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가 5성급 고급호텔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올해 초에는 북부 지역의 군사기지에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자폭테러로 50명이 사망하였다. UN의 개입 으로 정부군과 북부의 투아레그족 중심으로 형성된 반군간 평화협정이 체결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말리 내에서는 무력 충돌이 이어 지고 있다. 많은 세계 시민들에게 서부 아프리카 말리는 테러와 가난이 존재하는 나라로 기억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과거의 영예만 기억하고 살 수 없다고 하지만, 700년을 거슬러 올라간 14세기 말리 왕국 시절은 지금과 너무나도 다르다.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한다. 풍부한 황금과 소금으로 무역의 중심지로 경제적 번창을 누렸으며, 왕실의 든든한 후원 아래 이슬람 학문 연구를 위해 세계 속 이슬람 학자들이 모인 곳이다. 지금의 파리와 뉴욕처럼 문화 도시로서 번영을 누린 곳이 말리였다.

Mud Cloth라고 불리우는 Bogolanfini는 말리의 전통 유산으로 그들에게는 삶의 일부분에 속한다. Mud Cloth가 품고 있는 색감과 기하학적인 패턴은 세계 속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이 되었고 이제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디자인이 테러와 가난으로 알려진 말리에서 시작된 전통 에술이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 아직도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멀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오랜 시간 속 아프리카 곳곳에서 탄생 되어 발전해온 그들의 역사와 예술이 그 간격을 줄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주위에서 Bogolanfini(Mud Cloth)를 본다면 서부 아프리카 말리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참고 자료
1)http://fashion-history.lovetoknow.com/fabrics-fibers/bogolan
2)http://museum.msu.edu/ProgramsandPartnerships/Educational/TheTransformationOfWestAfricanTextiles/Curriculum_Connections/N_Diarra_Symbols.pdf
3)http://blog.naver.com/tamoce/220436384653
4)http://naturalhistory.si.edu/africanvoices/mudcloth/html/bogo/making.html
5)http://www.theglobeandmail.com/life/home-and-garden/design/infuse-a-bit-of-african-design-into-your-home-with-these-up-and-comingbrands/article33495705/
6)http://www.designsponge.com/2014/07/past-present-behind-mud-cloth.html
7)http://africaimports.com/catalogs/mudclothflier.pdf
8)http://tissusetartisansdumonde.fr/en/burkina-faso/
9)https://bogolanfini.wordpress.com/about/history-of-malian-mudcloth/
10)http://www.theglobeandmail.com/life/home-and-garden/design/infuse-a-bit-of-african-design-into-your-home-with-these-up-and-comingbrands/article33495705/

(연재) 아프리카의 가능성: 4) 150년의 역사를 품은 레소토(Lesotho)의 Basotho Blankets

아프리카에는 하나의 나라가 타국의 내륙 안에 둘러싸인 국가들이 존재한다.
얼마 전 대통령 선거에 패하고도 정권이양을 거부한 대통령으로 유명한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Gambia)와 남부 아프리카의 레소토(Lesotho)가 그 예이다. (감비아는 대서양 해안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수 있지만, 레소토는 그야말로 남아공 안에 둘러 쌓여 속해 있다.)

남부 아프리카의 레소토 (Lesotho)는 남아프리카공화국 (South Africa) 영토 안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 특징을 갖고 있다. 정식 명칭은 레소토 왕국 (Kingdom of Lesotho)이다. 남한의 3분의 1크기 땅에 200만 명이 조금 되지 않는 인구의 대부분은 바소토족이며 기독교인이다.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더운 날씨를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듯, 아프리카 대륙 안 하얀 눈을 볼 수 있고 스키장이 있는 나라들은 매우 소수이다. 그 중에 레소토가 포함 된다.  

(출처: 조선일보)

이번 글에서는 바소토족만의 특징을 볼 수 있는 바소토족 ‘담요’ (Basotho Blankets)를 소개 한다.

먼저, Basotho Blanket에 대해 British Airline in-flight magazine인 High Life에 16년 10월호에 소개한 글을 국문으로 번역하여 공유 한다.

(저자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Ufrieda Ho이다. 영문 PDF를 제공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더불어 잡지에 소개된 사진은 작가 Thom Pierce의 작품임을 명시 한다. )

<The Blanket that tells 100 Stories by Ufrieda Ho>

최근 들어 몸에 걸치는 담요를 세계적인 패션쇼장 무대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둘러 쌓인 독립 50주년을 맞는 레소토 왕국에서 담요는 150년 이상 선호 되어 왔다. 그 담요는 그들의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마부 사진에서 보듯 일상 생활의 한자락에 속한다.

(Pictured by Thom Pierce)

레소토의 겨울은 마치 면도날처럼 날까롭다. 햇살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고지대에 사는 현지인들은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항상 몸을 둘둘 말아야 한다. 해발 1,000m 이상에 위치하는 협곡들이 존재하는 국가에서 좋은 재질의 바소토 담요의 온기는 그 자체로 축복이다. 양모 담요 안 선명한 색상과 패턴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을 통해 레소토 국민임을 알수 있다. 모든 이들이 하나의 담요를 입는다. 여성들은 허리 또는 어깨에 숄(shawl) 형태로 두른다. 담요의 3분의1을 접어 어깨 위에 이중층을 만들어 두른다. 그리고 턱 밑에 핀으로 고정한다. 남성은 폰초(Poncho) 스타일로 어깨 위로 둘러 고정한다. 담요는 때론 아이들을 엄마들의 등에 업을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오늘날, 레소토에서 바소토 담요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Cape Colony에 도착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모셰셰 1세 왕의 초대를 받아 내륙으로 들어온 1830년대로 시간을 돌려보자. 모셰셰 왕은 줄루족과 보어인들과의 충돌을 피해 오게 된 산악지형을 바수토땅 (Basutoland)으로 선포하였다. 왕은 유럽과 바소토 국간 간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를 열망하였다. 영국 보호령이 되면서 종교도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레소토는 현재 영연방 회원국이다.) 이후 1960대 하웰이란 무역상인이 모셰셰 왕에게 영국에서 제작된 패턴이 포함된 담요를 선물로 제공하였다. 당시 담요는 독특한 문양과 줄무늬를 만들기 위한 짜임 (weaving)에서 발생하는 결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모셰셰왕은 담요를 마음에 들어하였고 그 전까지 입고 있던 털가죽 외투 (Kaross)를 버렸다고 한다. 이후 모든 이들이 왕처럼 줄무늬가 포함된 담요를 갖기 원했다. Aranda Textile Mills의 판매/마케팅 담당자인 Tom Kritzinger에 따르면 이에 의해 이후 담요에는 줄무늬 패턴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소토 담요는 레소토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제수도 요하네스버그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Randfontein에 위치한 아란다 (Aranda) 방직공장이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바소토 담요를 제작하는 제조 라이센스를 보유한다. 역사적으로 레소토왕국에서 사용한 담요는 영국의 Wormaids & Walker의 제품이었다. 그들이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바소토 담요는 그야말로 대히트였다. 당시 사람들은 오직 Victoria England 담요만을 원하였다고 한다.

(출처: http://www.blanketsandweaves.co.za)

브랜드는 현재까지 살아남았지만 Wormaids & Walker 공장은 곧 문을 닫았다. 1920년대 요하네스버그의 두 지역 (Harrismith & Heriotdale)의 방직 공장들은 라이센스를 통해 해당 담요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후 이탈리안 이민자들로 인해 세워진 Aranda 방직 공장이 1988년 독점 라이센스를 보유하기 까지 여러 회사들과의 계약들이 오고 갔다. Aranda의 거대한 공장 안에서 마케팅 담당자 Kritzinger는 다양한 바소토 유산의 담요 브랜드를 보여 준다. 모든 담요들의 크기는 165cmX155cm로 동일하며 입기 위한 완벽한 크기이다. 대부분의 담요는 남아공 내 경매로 인해 구매한 고급 품질인 Merion 양털로 제작 된다. 일부 저가 모델의 아크릴 소재의 섬유로 만들어 진다. 모두 풍요를 나타내는 독특한 세로 줄을 담고 있다. 또한 담요마다 다양한 문양과 색상을 포함하여 이는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Aranda에게 담요는 사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존재는 바소토 문화, 레소토 왕실과 레소토 국민들과 특별한 신뢰 관계 그 자체이다. 모든 새로운 디자인은 Aranda 팀에 의해 만들어 진다. 2007년에는 레소토 왕실의 후계자인 Lerotholi 왕자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Motlatsi 디자인을 하였고 2016년 레소토 독립의 50주년을 기념하는 Spitfire 에디션을 제작하였다. 50주년 기념 디자인은 역사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레소토는 영국의 24 Spitfire 전투기를 위해 모금을 하였다. 해당 전투기는 현재도 존재한다.

(Spitfire 전투기 Edition)

바소토 담요의 대표 디자인 Seanamarena는 옥수수 속대(Corncob)의 모양에서 모티브가 되었다. 레소토에서 옥수수 속대는 풍요과 부를 상징한다. 처음에는 부족장들만 입었고 적은 수량만 제작 되었고 많은 이들이 원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적은 수량만 제작 되었다.

(옥수수 속대는 풍요와 부를 상징한다. Pictured by Thom Pierce)

일상생활 용도인 Sefate와 Morena 브랜드도 있다. Kharetsa는 레소토의 Maluti 산맥에서만 존재하는 나선형 알로에 식물을 모티브로 제작 되었다. 알로에 디자인을 중시으로 바소토인들의 모자와 방패 디자인이 둘러쌓인 디자인이다.

(Kharetsa 담요의 중심에는 나선형 모양의 Spiral Aloe 문양이 있다.)

남아공 블룸폰타인 (Bloemfontein)의 국립미술과의 큐레이터인 Elmar du Plessis는 2014년 바소토 담요 컬렉션의 전시회가 개최되었을 때 바소토 담요의 의미와 문화적 중요성에 대해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당시 전시된 담요들은 Robertson가로 부터 받아 미술관이 장기 임대 중에 있다. (Charles Hedry Robertson이 Seanamarena 담요 디자인 창시자이다.) 오리지널 Seanamarena 디자인은 풍요와 부의 의미를 나타내는 옥수수 속대와 벌집 모양을 담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디자이너의 이니셜인 CHR에서 유래한 Chromatic 디자인으로 불리었다.

그가 만든 디자인 중에는 1988년 교황 요한의 레소토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Batho Ba Roma 담요도 있었다. 또한 세계 2차 대전의 영국군과 동맹군 그리고 전장에서 죽은 바소토인들에 경의를 표하기 위한 Badges of Brave 담요도 컬렉션에 포함 되었다.

 (Badges of Brave Edition Basotho Blanket을 입은 남성)

바소토 담요는 때때로 인기가 시들어 지는 경우도 있었다. 1980명대 중반에는 질병으로 가축 살처분으로 전통 소가죽 겉옷을 만들 수 없게 되자 다시 바소토 담요가 필요하게 되었다.

1940년에서 1950년대에 바소토 담요는 유행에 한창 뒤쳐졌다. 바소토인들은 당시 남아공으로 이주하여 금광에서 일을 하였다. 그들이 입고 있는 담요는 무리에서 그들의 정체성 바소토인임을 구분짓게 해주었다.

요즘 바소토 담요는 유명 디자이너 제품으로 재구상 되며 패션 액세서리로 활용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레소토 출생의 남아공 케이트타운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Thabo Makheta는 2011년 경주마 행사를 위한 디자인를 고민하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주제는 Royalty(왕족)이었다. 아프리카 왕족에 대한 무엇인가를 디자인 하고 싶었고 그 때 바소토 담요를 옷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고안했다고 한다.

2016년 Makhetha의 Starburst Kobo 코트는 Design Indaba가 선정한 Most Beautiful Objects in South Africa (MBOISA)에 선정 되었다. 그녀는 뉴욕과 영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 박물관으로 부터 영구 보관을 위한 작품을 제공을 요청 받았다.

 <Basotho Blankets Inspired Couture>

150년 전 영국에서 넘어온 이후 바소토족의 담요에는 기능을 벗어나 출생, 성인식, 결혼, 장례에 건네지는 선물로서 그들의 삶 속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들 삶 속에 녹아져 있다. 아름다운 색의 조합과 문양이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많은 이들은 레소토 국가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남아공에 비해 관광 자원이 부족한 레소토는 여행지로 잘 소개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바소토 담요를 통해 남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레소토가 알려지고 있다.
최근 바소토인들의 삶의 일부분인 Basotho 담요에서 영감을 받은 디지이너 컬렉션이 무대에 선 보였다. Basotho 담요는 문화유산의 가치, 패턴, 색상 그리고 문양의 의미가 함께 녹아지며 이제는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 받고 있다. 
(Louis Vuitton 2012 F/W에 소개된 Blanket Coat)
(Louis Vuitton 2017 S/S 컬렉션에서 선 보인 위의 셔츠와 담요에서는
오른쪽 Basotho 담요(Seanamarena디자인)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다. Basotho 담요는 거실과 침실 등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 가능하다.
네덜란드의 가구 인테리어 업체인 Noush는 Basotho 담요 직물을 활용하여 쿠션(Cushion)을 판매 하였다.
남아공 소재의 Mountain Kingdom은 Basotho 담요의 의미와 디자인을 국제 무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Basotho 담요를 생산하는 Aranda 방직 공장의 제품의 독점 수출업체로 최근 2015년에는 마이애미에서 열린 Art Basel 행사 동안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인 BASE에 전시 되었다.
남아공 Cape Town 소재의 의류 브랜드인 Unknown Union의 디자인의 중심에는 아프리카 중심의 전통 미가 담겨져 있다. 이들도 Basotho 담요를 활용한 제품을 선 보였다. 수익의 일부분은 레소토 고아들을 위한 NGO단체 Sentebale에 기부 된다고 한다.
Unknown Union에서 만든 Basotho Jacket을 살펴보자.

아직도 많은 이들은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 전쟁, 가난, 기아 등 부정적 인식과 함께 사파리 관광, 더운 기후 등 관광 측면의 관점에 갇혀 있다. 인류의 시작점인 아프리카 대륙에는 다양한 민족, 언어, 문화가 공존 한다. 특히, 오랜 역사 속에서 발전 되어 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유산은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Basotho인들에게 담요는 Kobo ke bophelo 라고 설명한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The blanket is Life이다.

이제는 그들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통해 아프리카와 각 나라들이 알려지길 소망한다. 상업적 가치로서 재탄생되어 그들의 스토리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퍼져간다면, 더 발전적이며 효과적으로 아프리카를 알릴 수 있지 않을까? 

레소토의 경우 바소토 담요 (Basotho Blanket)가 대표적 예이다.

참고 문헌 
http://www.mountainkingdom.org/news/2016/8/16/from-the-mountain-to-the-runway-spreading-the-basotho-blanket-worldwide
http://www.the-other.info/2015/south-africas-tribal-basotho-blanket-for-herdsmen-and-royals-alike
http://www.vogue.com/article/basotho-heritage-blankets
http://city-press.news24.com/Trending/Fashion-The-world-in-a-Basotho-blanket-20150719
http://www.jozilife.co.za/design/the-blanket-is-life/

(연재) 아프리카의 가능성: 3) 서부 아프리카의 음악: Afrobeat(s)

<Music is life>
우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세가지 요소를 의, 식, 주로 교육 받았다. 하지만 원시 시대를 거쳐, 산업화, 인터넷 시대를 지나 4차 산업 시대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제 생활의 기본 요소는 의식주만이 될 수 없다. 어떤 이에게는 여행이 본인의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요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음악이 그의 삶 자체일 수 있다. 음악은 더 이상 연주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본인이 듣는 음악(장르)은 그들의 성격과 취향 또는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햄버거 가게, 쉐이크쉑, 본사에서는 매장 안에서 트는 노래를 직접 선별한다. 모든 지점에서는 동일한 음악이 틀어진다.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과 함께 매장 안에 울려퍼지는 ‘소리’ (음악)는 그들의 문화와 브랜드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리는 ‘메세지’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특정 음악과 장르를 알아채는 낯선 이가 아파트 이웃보다 더 반가웠던 느낌이 있지 않는가. 때론 마음 먹고 시작하는 운동을 위해 빠른 박자의 음원을 선곡하듯, 우리의 삶에 음악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Music is life.

인터넷 등장 이후 우리 모두 10시간 비행 거리가 넘는 지역에 관한 뉴스를 원하는 시간에 찾아 볼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 제국시대에 비하면 현재 국경의 의미는 매우 희미하다. 글로벌 시대 속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음악’을 꼽을 수 있다. 미디어에서 강조하는 한류 그리고 KPOP의 영향력이 그 예다. 한국의 대표 가수인 싸이의 행보를 보자.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와 그 ‘음악’을 통해 유투브 조회수는 이미 27억 건 이상이며 유명세를 통해 미국 진출로 이어졌다. 이 후 ‘젠틀맨’과 ‘대디’ 등 후속곡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다. 언젠가 강남역에는  강남 스타일 동상이 세워졌다.  아프리카 현지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Samsung’을 외친 그들이 이제는 ‘Gangnam Style’ 춤을 보여 준다. 음악의 파급력은 우리 상상 이상이다. KOREA AID가 한국을 알리겠는가? Gangnam Style이 한국을 알리겠는가?

아프리카의 다양함은 음악 장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만의 리듬을 녹여서 변형한 Afro-pop, Afrobeats, Afro trap, Afro Rock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는 Afrobeat와 현지 아티스트를 소개 하고자 한다. 또한, 바다를 건너 유럽과 북미의 유명 아티스트와의 작업과 함께 울려 퍼지는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력 사례를 소개 하겠다. Afrobeat를 통한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알아보자.

<Slave Trade, African Music and Billboard>
현대 대중 음악의 주요 장르들 (Soul, Hip Hop, Rock 등)은 모두 흑인 음악 영향 아래 발전되어 왔다.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 좋아하는 장르 중 소올, 블루스, 재즈, 살사, 룸바가 속해 있을 것이다. 다양한 현존의 현대 음악장르들은 과거 노예무역 시대에 아메리카 (미주/라틴)에 넘어간 이들과 현지 문화와 융합되며 발전 되었다. 대표적으로 룸바(Rumba)는 그들만의 원시적인 춤, 특유한 리듬 및 음과 라틴 아메리카의 폴라 리듬이 더해지면서 탄생 되었다. 룸바 댄스는 최근 UNESCO의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미국 남부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버티기 위해 불렀던 ‘노동요(Field Holler)’는 향후 가스펠 (Gospel)과 블루스(Blues)로 발전 되었다. 이후 재즈(Jazz)도 탄생 되었다. 재즈에서 더 대중적인 형태로 발전된 음악이 리듬앤블루스 (Rhythm and Blues, R&B)이다. 그들의 ‘한’을 표출하고자 했던 음악들이 현재 대중음악의 장르들로 파생되었고 빌보드차트 대부분을 차지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흑인들이 쌓은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예 12년 영화 중 목화 농장 속 흑인 노예들의 노동가 장면>

<Fela Kuti: King of Afrobeat>
송기철 음악 평론가가 네이버 음악에 기고한 ‘월드 뮤직의 정점, 서부 아프리카 음악’ 서문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아프리카 음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 가운데 특히 서부 아프리카 음악은 현재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을 이끌고 있다. 영국의 월드 뮤직 잡지 ‘SONGLINES’의 편집장 조 프로스트 (Jo Frost)는 “서부 아프리카 음악은 현재 월드뮤직의 최정점에 서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서부아프리카의 대표 음악 장르인 Afrobeat은 1970년대에 탄생 되었다. 가나에서 시작된 highlife와 나이지리아의 Yoruba부족의 음악을 미국의 Funk와 Jazz와 융합한 형태의 새로운 음악 장르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 때 넘어온 서구 음악에 타악기 연주가 가미된 리듬을 혼합하는 응용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월드 뮤직으로 발전시켰다. Afrobeat는 현재의 가나,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을 중심으로 유명해지며 대륙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Afrobeat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Fela Kuti를 꼽는다. 1938년생인 그는 Afrobeat의 창시자이다. 중상층 가정에서 자란 그의 음악인생은 영국의 음악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 되었다. 의대 진학을 위해 영국에 보냈지만 그는 음대로 진학하였고 트럼펫 연주와 함께 Jazz와 highlife 음악의 혼합 매력에 빠지며 연주자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이후 음반 녹음을 위해 방문한 1969년 미국 LA에서 겪게 된 급진적 흑인 인권 운동 (Black Panther Movement)과 James Brown의 Funk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Afrobeat 모습이 갖추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그는 Afrika 70 밴드를 결성하고 미국 펑크와 재즈음악에 요루바 (Yoruba) 리듬을 녹인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었다.

<Fela Kuti>

그는 부족 음악의 색깔을 지우고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사회 정치 비판 메세지를 가사 속에 담았다. 특히 70년대의 군부 정권에 항의하는 메세지가 주로 포함 되며 Afrobeat는 항의 운동 가요로도 입지를 다졌다. 이와 함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현지인들의 자립을 강조하는 사회적 운동에도 힘썼다. 군부 정권에 의해 여러 차례의 감옥 생활에도 그의 음악 인생을 계속 되었다. 1997년 그의 나이 5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Afrobeat는 월드 뮤직으로서 후대 아티스트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미국의 유명 힙합 아티스트들은 그가 연주했던 비트를 배경으로 사용하여 음반을 제작 하였다. )

그의 앨범 속 Afrobeat를  느껴보자.

 

<Rebirth of Afrobeat and going to global>
스마트폰의 시대 이후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기존의 다운로드 방식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바뀌었다. 아프리카 내 인터넷 보급율과 스마트폰 사용율의 증가는 이를 더욱 촉진하며 현지의 다양한 음악을 세계 속으로 퍼트리고 있다. 특히 Afrobeats는 미국의 유명 아티스트들에게도 새로운 앨범 제작에 영감이 되고 있다. Grammy Award 수상자인Alicia Keys가 2016년에 발매한 ‘In Common’ 노래는 Afrobeats 리듬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캐나다 출신 랩퍼인 Drake (드레이크)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Afrobeats 아티스트 Wizkid와의 피쳐링한 곡을 선보였다. ‘One Dance’는 빌보드 차트에서 10주 동안 1위 자리를 지켰다.

Drake – One Dance feat Wizkid & Kyla

 

(앞서 소개한 Fela Kuti가 창시한 Afrobeat와 현재의 Afrobeats 사이 표면적으로 알파벳 S의 차이를 볼수 있다. 두 장르 간의 차이점은 Fela Kuti가 그의 음악에서 보여준 반정부주의 성향의 사회정치 비판 메세지가 사라진 것이다. Afrobeat 리듬 안에 아티스트와 관객들 모두가 음악 자체를 즐기는 캐리비안 느낌의 POP 성격이 더해진 것이 Afrobeats이다.)

Afrobeats 아티스트의 유명세와 영향력은 유명 음반 제작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진다. Wizkid는 Sony Music의 RCA Records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아프리카의 비욘세로 불리우는 Tiwa Savage는 유명 랩퍼 Jay Z의 음반회사에 합류 하였다.

<Wizkid>
Wizkid는 1990년 나이지리아 경제 수도 라고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Ayodeji Ibrahim Belogun이다. 2011년 그의 첫 데뷔 앨범 이후 고향인 나이지리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Wizkid는 성공을 향한 열망이 가득차 있는 소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Drake와의 협업 이전에도 많은 유명 아티스트과 작업을 했었다. Ojuelegba 곡을 통해 국제적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Ojuelegba는 라고스 수도 내 지명으로 그가 어린 시절 자란 동네이다.

Wizkid 대표곡 Ojuelegba를 들어보자

 

<Africa is going to be the new bubble>
OKAYAFRICA 매체에서의 Akon과 Will. I Am 인터뷰를 보면 한 동안 음악 산업에서는 K-POP Bubble이 있었으나 이제는 Afrobeats 등장 이후 새로운 변화가 기대 된다.

“Africa is going to be the new bubble,” will.i.am mentions, comparing the musical explosion to the rise of K-pop a few years ago.

Afrobeat의 창시자인 Fela Kuti의 음악 세계는 그가 미국 LA 있는 동안 James Brown의 funk style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제는 그의 음악에서 태동한 Afrobeats가 세계속 유명 아티스트들의 음반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넘어온 힙합 등 음악을 듣고 자란 그들이 이제는 그들의 음악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가 아닐까?

2016년 7월 뉴욕 Barclay Center 공연장에서는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아프리카 출신의 아티스트들로 이뤄진 ‘One Africa Music Fest’가 열렸다. 요즘 대세로 불리우는 Afrobeats 아티스트인 Wizkid, Davido, Tiwa Savage와 함께 Fela Kuti의 아들인 Seun Kuti도 참여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에는 런던에서 5월에 공연이 계획 되어 있다.

음악 축제로 가득한 한국에서도 언젠가 다양한 아프리카 음악의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열리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http://www.huffingtonpost.kr/hyuk-jung/story_b_4983370

https://theculturetrip.com/africa/nigeria/articles/fela-kuti-s-afrobeat-legacy/

http://edition.cnn.com/2016/05/04/africa/african-music-twitter/

https://www.washingtonpost.com/entertainment/music/is-this-the-year-that-african-music-conquers-the-us/2016/08/17/561c8e5e-60a8-11e6-9d2f-b1a3564181a1_story.html?utm_term=.379dbb3105bb

https://www.ft.com/content/903ea546-7b41-11e6-ae24-f193b105145e

아프리카 출장시 우버(Uber) 이용 하는 것은 어떨까?

아프리카 출장시 현지에서의 이동은 대부분 파트너사의 차량 지원으로 이뤄진다.하지만 일정 중 타 업체로의 이동시 개인적으로 이동수단을 알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가끔은 만나고자 하는 업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개인적인 이동 수단 (택시 또는 기차)를 통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 픽업 받기도 한다.

최근부터 남아공 조벅 (요하네스버그) 방문시에는 차량으로 1시간 떨어져 있는 업체와 미팅을 위해 차량 지원를 따로 요청하지 않는다. 직접 고속 열차를 타고 업체가 있는 동네 인근 역까지 이동해서 픽업 받아 업체로 이동한다. (고속열차를 타면 15분이면 인근 역까지 이동할 수 있다.)

출장시에는 현지의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성을 크게 높이지만 낯선 타지에서 운행하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여러면에 쉽지 않다. (비도덕적인 일부 한국 택시 기사들이 외국인들에게 요금바가지를 씌우는 것처럼 외국에선 우리가 피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남아공 출장시에는 부서 내 여러 동료들이 함께 동행하였는데, 중간 중간 차로 이동 해야 하는 일이 많아 처음으로 UBER(우버) 서비스를 이용하였다. 우버가 잠시 운행되었던 한국에서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에 반신반의 하며 가입하고 첫 서비스를 요청했다.

이후 당시 출장 동안 10번 넘게 UBER를 사용하며 편리하게 이용하였고 최근에 다녀온 남아공 방문시에도 여러번 UBER를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UBER Fan이 되었다.

2. Uber 소개
: 2008년 프랑스에서 택시를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UBER의 두 창업자는 당시 버튼 하나로 택시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생각이 100년의 역사를 보유한 GM (General Motors)의 기업 가치를 뛰어 넘는 현재 약 $ 68 Bill (70조원) 가치가 예상되는 IT 기업이 되었다. BMW를 뒤쫓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취지는 공유경제으로 시작하였지만 사업 방식에서 현재는 온디맨드 (On-Demand) 기업으로 불리는것이 더 어울리는 우버는 기존 택시 업계에 Disruption (파괴적인 변화)을 이끌고 있다.

우버가 시작된 계기에 대한 글은 라애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링크: http://www.investopedia.com/articles/personal-finance/111015/story-uber.asp)

아프리카에서의 우버가 진출한 국가는 어디이며 진출 전략은 무엇이고 또한 문제점을 무엇인지 알아보려 한다.

3. Uber의 아프리카 진출 소개

images (Image Source:Techcrunch.com)

<진출 국가 및 서비스 종류>

2013년 8월 조벅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나이리지아에 진출하였다. 최근에는 가나 아크라에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현재까지 진출된 국가 및 도시는 아래와 같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프리토리아, 케이프타운, 더반, 포트 엘리자베스)
나이지리아 라고스 & 아부자, 케냐 나이로비&뭄바사,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모로코 카사블랑카, 이집트 카이로&알렉산드리아, 우간다 캄팔라, 가나 아크라

현재 남아공 내 활동하는 우버 기사는 4,000명이 된다고 하며 일반 택시 서비스인 UberX와 고급 서비스 (high-end Service)인 UberBlack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음식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UberEATS 준비를 위한 인력 채용을 진행 중에 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도심 내에 서비스를 올해 안에 제공할 계획이고 배달 소요시간을 10분 내로 목표하고 있다.
<Cash Payment 도입>
케냐 나이로비에 진출한 우버 서비스의 경우 Cash Payment 서비스를 도입했다. 그 배경에는 은행 이용률과 신용카드 보급율이 타 국가 (남아공 등)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현지 문화/배경을 반영한 (adaptation) localization 전략이다. 최근에는 남아공에도 Cash Payment 옵션이 추가 되었다. (App 내에 신용카드 정보의 기입을 꺼리거나, 신용카드가 없는 고객들을 잡기 위한 방편이다.)

Cash Payment 도입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도심은 높은 범죄율로 악명 높은 곳이다. 우버 도입 이후 현재 기존 미터 택시 기사들의 불만이 폭력으로 이어진 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Cash Payment 옵션은 우버 드라이버들을 향한 범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우버 기사들의 지적이다.

참고로 남아공 내 우버 기사 신청방법이 정리된 기사 링크 첨부한다.
링크:http://www.uberkit.net/blog/how-to-become-an-uber-driver-in-south-africa/

4. 남아공 내 uber 사용 경험

출장 동안 본인은 UberX 서비스를 사용해 보았다. UberX는 일반 택시 서비스로 주로 사용되는 차량은 Toyota Corolla, Voswagen Polo 그리고 Kia Rio이다. Uber측에 따르면 남아공 기준 최소 요금은 R20이며 사용시점 부터 R5에서 기본요금 적용 된다고 한다.
보통 1km 당 R6 ~ R 7.5 비용이 추가된다. 요금의 20 ~ 25%는 Uber의 매출이다.

uber-price-drop

예로 2킬로 이동 (약 7분 소요)에 총 R24를 지불하였다. 환율이 $1 당 R15인 것을 감안하면 $ 2불 미만 소요된 것이다. (아래 결제 내역 참고바람)
screenshot_2016-09-08-16-01-03

다른 예는 Santon 도심에서 Midrand (외곽 도심)으로 이동시 지불한 내역이다. 18km 이동 (20분 소요)에 총 R155 (약 $ 10)이 소요 되었다.
screenshot_2016-09-08-16-04-15

우버 택시 탑승과 동시에 Google Map을 보며 Route 대로 제대로 이동하는지 확인 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차량이 신형으로 내부 청결상태도 만족스러웠다.

6, 7월 두번의 연달은 남아공 출장 동안 14번의 우버 서비스를 이용하였다. 이 중 한 우버 드라이버가 기억이 남는다. 마치 콩고의 Sapeur와 같이 패셔너블하게 옷을 입은 중년의 우버 드라이버의 차량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 나왔다. 재즈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와 함께 재즈에 대해 얘기 등 많은 얘기 (interaction)을 하며 도착지까지 이동하였다. 개인적으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Uber vs Metered Taxi and Security 이슈>
미디어를 통해 남아공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우버 서비스 합법적으로 진행 중인 곳은 기존 택시 기사들과의 충돌을 접할 수 있다. 남아공도 마찬가지이다. 요하네스버스에서는 두 택시 드라이버의 충돌에 중재에 나선 경찰이 metered 택시 기사의 총격을 당했었다.

참고로 요하네스버그 내 신 도시로 불리오는 Santon에 있는 Gauteng Santon 역 주변에는 우버 기사가 손님을 픽업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6월 출장 때는 근처에서 우버 차량을 이용하였으나 한 달 사이 7월 출장 동안에는 우버 기사가 근처로 올 수 없기에 픽업 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였던 기억이 난다.

우버 이용시 고객의 안전 문제도 미디어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인도에서는 우버 기사가 여성 손님을 강간한 범죄가 일어났다. 최근 요하네스버그에서는 한 커플이 나이트 클럽에서 나와 우버 택시 픽업을 요청한 후 차량에 탑승하였으나 봉변을 당했다. 해당 차량은 경찰 조사 결과 우버 차량이 아닌 metered 택시였다고 한다. (아마도 나이트클럽에서 음주 후 요청한 차량이
우버 차량인지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고 탑승한 것 같다.)

우버 App 이용시 차량 픽업이 요청되면 해당 기사의 이름, 얼굴사진을 볼 수 있고 차량 번호 (Plate Number)를 확인하여 우버 차량이 맞는지 재확인한 후 탑승하면 된다. 한 매체에서는 안전한 우버 사용법을 정리하였다.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
1. 운전시가의 이름, 얼굴 사진, 차량 종류, 차량 번호 확인 후 탑승
2. GPS (Google Map)을 보며 해당 차량이 어느 장소에서 오는지 미리 확인하고
이동시 맞는 Route로 이동하는지 확인
3. 예상 도착시간과 도착지, 우버 기사 이름, 차량 정보를 가족 또는 지인과 공유
4. 문제 발생시 우버 고객 서비스 24/7에 연락
5. 서비스 이용 후 별점 (Feeback) 책정으로 우버 기사 서비스 평가하여 사용자들간 공유

5. 맺음말

본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와 관련 산업에 관심은 많지만 실제로 최신 기기와 기술을 접하는 것에 느리다.우버의 경우도 한국에서 잠시 서비스를 진행할 때 이용하던 이들의 의견만 들어보기만 하고 따로 이용해본 경험은 없다.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우버 APP 조작 및 서비스 이용이 모두 편리하였다는 것이다. 왜 우버 팬들이 많이 생기고 우버가 빠르게 성장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남아공 이외 우버 서비스가 있는 아프리카 국가에 방문시 그 곳에서도 필요에 따라 우버를 사용해볼 계획이다.

가나(Ghana)에는 태어난 요일에 따라 불려지는 이름이 있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소개할 떄 이름을 먼저 얘기할 정도로 우리 모두에게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은 자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선물이다. 연예인들 대다수가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특정 예명을 사용하듯, 이름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와 느낌을 간직한다.

동양에서는 사주의 부족한 기운을 이름을 통해 채우듯, 이름은 인생의 시작점에서 맺어지는 첫번째 결정이다.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가나는 어느새 네번 방문하게 되었는데, 가나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영문 예명인 Philip 보다는 Kojo 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 한국식 이름으로 소개하면 우리가 친근하게 받아들이듯, 현지인들은 가나식 이름으로 소개하는 나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을 준다. 관심은 관계를 형성하게 해주고 경계를 무너지게 한다. 그래서 항상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Kojo는 아칸족의 이름 방식 중 월요일에 태어난 남자 이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7대 UN사무총장인 Kofi Annan의 Koji는 금요일에 태어난 남자 이름이다. 태어난 요일에 따라 불리우는 이름을 First Name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고 Middle Name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Kofi_Annan_2012_(cropped)      (이 분이 Kofi Anan이다. 넬슨 만델라와 할리우드 배우 Morgan Freeman과 혼동하지 말자 ^^.)

가나에 방문하면서 가장 신기하고 재미있게 와닿았던 아칸족식 이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가나 그리고 아칸족>

가나 (Ghana)의 뜻은 현재의 모리타니아와 말리 지역에서 번성하던 Ghana Empire의 Emperor (Warrior King)의 이름인 Ghan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나는 지리적으로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주변에는 코트디부아르, 적도기니, 및 토고로 둘러 쌓여 있다. 약 2,7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10개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져 있고 Greater Accra 행정구역 내 속한 수도는 해안과 가까운 아크라 (Accra)이며 수도에만 전체 인구의 10%가 거주하고 있다.

Ghana-map

ghana_sm_2015 (제2의 수도인 Kumasi가 위치한 행정구역은 Ashanti로 불리우며 Ashanti는 과거 Akan족의 후예인 Ashanti Kingdom이 번영하던 지역이다.)

언어는 다양한 부족어 (대표적으로는 Asante)와 영어를 사용한다. 다양한 부족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 중 대표적 부족이 Akan 민족이다. Akan 민족은 가나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인 코트디부아르 인구의 대부분을 형성하는 부족이다. 서부아프리카 지역 인구 중 2,000 만 명이 Akan 민족이라고 한다. 이번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이름 작명 방식도 Akan 민족의 전통이다.

<About Akan People>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 거주하고 있는 Akan 민족의 후손들의 인구는 약 2,000 만명이 된다고 한다. Akan 민족으로 구성된 다양한 부족들이 존재하며 그 중 하나는 Asante 언어를 구사하는 부족이다.

Ashanti_otumfour                        (Akan족의 후손인 현 Ashanti 부족의 왕 Otumfuo Nana Osei Tutu II이다)

Otumfuo-Osei-Tutu(때로는 모던하게 양복을 입기도 한다..)

15세기 부터 19세기까지 Akan 부족은 Gold Mining을 통해 부를 축적해 나갔다. 포르투갈 부터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인 등 유럽인들의 관심을 이끌게 되었고 이 때 부터 Akan 부족과 유럽인들 사이 Slave Trade가 시작 되었다. 유럽인 중 특히 포르투갈인들은 Akan Gold 교환의 대가로 노예를 제공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Akan인들은 흑인 노예들을 유럽인들에게 제공하며 대서양 노예 무역에 참여하였다. (이 사실로 인해 가나는 노예 무역의 후손들에게 사과를 표명하였다.)

C360_2015-07-25-15-08-50-382(Elmina Castle의 전경이다.)

(가나 Cape Coast에 위치한 Elimina Castle은 포르투갈인들의 노예 무역의 중심지였다. 1500년 부터 1800년대까지 Elimina Castle에 있던 흑인 노예들 중 살아남은 자들만 이 문을 통과하였다. 그들은 이 문을 통과하여 아프리카 대륙을 더나 북미, 남미, 자메이카로 팔려가는 선박을 탔다.)

C360_2015-07-25-15-15-36-141(그들은 이 문을 지나 정박된 배를 타고 북미와 남미로 팔려갔다.)

Akan인들은 European Colonist에 대항하며 자치권을 유지하려 했으나 1900년대 초 가나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1957년 3월 가나는 서부아프리카 식민지 중 처음으로 유럽국가의 식민 지배로 부터 독립하였다.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영국 및 포르투갈 지배를 받던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흑인들은 노예 무역의 희생자였다. 해안에 위치한 노예 감옥소를 통해 자메이카 등 캐리비안 해안으로 팔려간 Akan 민족 노예들을 Coromantes로 불리었다고 한다. 노예 중 지도층 대다수가 요일에 따른 이름을 갖게 되면서 이 전통이 서부 아프리카 지역과 노예로 인해 타국으로 이동한 Africa Diaspora에게도 퍼졌다고 한다. 요일에 따른 이름에는 각각 부여되는 캐릭터도 있는데, 예로 금요일에 때어난 남성의 이름은 Kofi이고 이와 부여된 의미는 Fertility (비옥/다산)이라고 한다.

성별 각 요일에 따른 이름과 부여된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래 요일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여성, 왼쪽은 남성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Kwadwo, Kojo 월요일 Adwoa
Kwabena 화요일 Abenaa
Kwaku 수요일 Akua
Yaw 목요일 Yaa
Kofi 금요일 Afua, Efia
Kwame 토요일 Amma
Kwasi 일요일 Akosua

가나 아칸족 출신 유명인들에 대해 알아보자. 앞서 소개된 제 7대 유엔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의 Kofi를 보면 금요일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수 있다.

우리에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가나 출신의 예능인 샘 오취리도 아칸족이다. 과거 케이블방송 비정상회담에서 본인이 아칸족 출신이라고 밝혔고 풀네임은 사무엘 나나 쾌시 오취리라고 한다. Middle Name인 쾌시에서 Kwasi(콰시)를 확인할 수 있고 샘은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0708000196_0

가나 출신 유명 축구 선수로 과 첼시 구단에서 활약한 Essien 도 아칸족이다. 그의 Middle Name은 Kojo로 월요일에 태어난 것을 알수 있다. (에시앙은 현재 그리스 아테네 프로축구팀 파나티나이코스FC에서 활약 중이다.)

다운로드

가나인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Efya의 본명은 Jane Fara Fauzzier Afia Boafowaa Yahaya Awindor 이다. 중간에서 Afia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위로 올라가 요일별 여성 이름 리스트를 보면 금요일에 해당하는 Afua, Efia를 볼 수 있다. Afia는 기존 형식에서 변화된 표기 방법인데, 여기서 추가 변형하여 예명인 EFYA로 활동하고 있다. SOUL, POP 그리고 JAZZ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음악 중 2 곡 감상을 추천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이 생길 수 있는 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CfR5ZV2XEAACz2X<최근 발매한 EFYA의 Janesis 앨범>

왜 나이지리아 정부는 남아공 이동통신사 (MTN)에 $ 5.2 Bill 벌금을 부과했는가?

왜 나이지리아 정부는 남아공 이동통신사 (MTN)에 $ 5.2 Bill 벌금을 부과했는가?

2015년 10월 26일 나이지리아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남아공 소재의 이동 통신사 (MTN)는 무려 $ 5.2 Bill (6조원)의 벌금을 내야하는 처지에 몰렸다. 나이지리아는 (라고스만) 이미 2번 정도 방문했었고 아프리카를 다니며 MTN 간판은 수도 없이 보았기에 이 뉴스가 무척 흥미로웠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예산 부족을 벌금을 통해 채우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외국계 기업들의 진출 또는 투자을 막는 삽질을 하는 것인가?  

우선 이번 사건과 관련된 숫자를 나열해보자.

  1. MTN의 벌금 규모는 $ 5.2 Bill
  2. MTN  Group의 세후 영업 이익(2014)은 $ 3.2 Bill
  3. 나이지리아 정부의 연간 예산(2014)은 $ 23 Bill
  4. 나이지리아 인구는 약 1억 7천만 명
  5. 나이지리아 내 MTN 이용자는 약 60 Mill로 약 40%대 시장 점유

이 규모는 나이지리아 정부 예산의 1/4이며 MTN 그룹 연간 세후이익의 163%를 차지할 정도로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나이지리아 이동통신 위원회 (Nigeria Communication Commission)는 남아공 소재의 공룡 이동통신사에 이렇게 크나큰 벌금을 부과한 것일까?

우선 이유와 현재 진행 과정에 대해 알아 보기 전 나이지리아와 MTN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나이지리아(Nigeria)>  

아래 그림과 같이 나이지리아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 서부에 위치해 있고 주변국으로는 니제르, 베닌, 차드 그리고 카메룬에 둘러 쌓여 있다.                                                                                             ni-map(Source: CIA the World Factbook)

인구는 약 1억 8천만 명으로 아프리카 전체 인구 약 10억 명 중 18%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인구 수가 높은 아프리카 국가는 에티오피아로 약 1억명이다.) 많은 인구 수만큼 전세계 흑인 7명 당 1명은 나이지리아인이라는 얘기도 있다. 15년이 지나면 세계 인구는 약 85억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나이지리아는 현 인구수의 50%가 증가한 2억 6천만 명 인구로 증가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경에는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24세 이하라는 사실과 높은 출산율 (산모 당 5명 이상)이다.  전체 인구의 50% 정도는 무슬림이며 40%는 기독교이다. 지역 분포로는 북부가 무슬림, 남부에 기독교 신자 인구 수가 높다. 나이지리아는 소수 종족까지 포함하면 500개가 넘는 종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다. 이 중 세개의 종족 (Hausa, Yoruba, Igbo 순)의 규모가 크다. Igbo 종족의 대다수는 상업에 종사하는 상공인으로 특히 무역업에 많이 진출한 종족으로 소개된다. (실제로 지난 7월 나이지리아 방문시 현지 택시 드라이버도 Igbo 종족이 라고스 지역의 대부분 상권을 이끌고 있다고 하였다.)

면적은 미국 기준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약 2배 정도이다.NI_area  (Source: CIA the World Factbook)

경제 규모는 약 5,000억 달러로 아프리카의 경제 대륙인 남아공의 3,500억 달러를 제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국가가 되었다. 배경에는 방대한 원유 자원과 수출이다. OPEC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원유량은 전세계 원유량의 약 3%를 차지한다. 2015년 10월 기준으로도 나이지리아는 주요 원유 생산 국가 중 7번째로 많은 원유를 생산하였고, 2014년 한해 약 $ 76 Bill 규모의 원유를 수출하였다.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는 원유를 통한 수입이 대부분의 국민의 삷의 질을 높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이지리아의 Median per Capita Income은 $ 480로 대부분이 한 주를 $ 10로 살아간다. 여기에서 추가로 나이지리아 내 원유 theft 문제도 심각하다. 매일 약 150억원 에서 250억원 규모의 원유 도난이 이뤄지고 있고 나이지리아 정부는 도난 방지를 위해 Drone을 띄운다고 한다.

캡처   (하락하는 원유 가격 (Source: OPEC))

더 큰 문제는 떨어지는 원유 가격과 큰손인 중국의 구매 감소로 인한 정부 예산 충당 부족과 외화 (달러) 유입 감소에 따른 환율 인상, 수입품 가격 인상, 물가 상승 등 정부와 국민 모두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 예산의 70%를 충당하는 원유 수출의 둔화로 인한 예산 부족이 이번 사태를 이끌지는 않았을까 생각된다. 

추가로 나이지리아 관련하여 Wait But Why에서 소개된 Tim Urban의 나이지리아 방문을 통한 알게 된 19가지 사실 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자 그러면 이제는 MTN 회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MTN의 전신인 M-Cell은 남아공에서 흑인차별정책이 철폐된 1994년도에 설립되었고 이후 10년 뒤 2004년에 요하네스증권거래소 (JSE)에 상장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통신 회사 인수와 인근 국가 진출을 통해 규모를 키워 현재는 아프리카 및 중동 내 22개 국가에 통신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전체 서비스 이용자는 2억 3천만 명이다. (남아공에서는 약 3,000만 명에게 그리고 나이지리아에서는 6,300만 명 이용자들에게 서비스 공급 중이다.) 참고로 나이지리아에서는 2001년 $ 285 Mill을 지불하고 15년간의이동 통신 라이센스를 얻어 현재까지 통신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2014년 기준 회계자료에 따르면  매출은 약 $ 12.7 Bill이며 세후 영업 이익은 $ 3.2 Bill이다.

 

캡처(MTN 홈페이지에 소개된 서비스 국가와 이용자 수)

 

캡처 (아프리카 회사 중 2014년 기준 시가총액으로 6위에 선정된 MTN. 참고로 사진에서 보듯 상위권 내 회사들이 대부분 남아공 회사들이다.)

SCCZEN_AP150611052738_620x310(길거리에 있는 MTN 천막 kiosk (Source: Associated Press))

<$ 5.2 Bill 벌금의 배경 그리고 현재 진행 현황>                                                                                      나이지리아 이동통신위원회는 등록되지 않은 유심카드를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통신 서비스를 정지 시키지 않은 MTN에 약 6조원 대의 벌금을 부과헀다. 그 배경에는 이슬람 테러조직인 보코하람 등 극단 이슬람주의 테러 단체의 테러 활동과 현지에서의 범죄활동에 비등록된 유심카드로의 이동 통신 이용이다. 예로 9월 말에 前 재무부 장관 (Olu Falae)를 납치한 무장 강도들이 비등록된 MTN 유심카드를 사용하여 몸값 지불 협상을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후 나이지리아 정부 관계자들의 인내에 한계가 온 것이다. (심카드의 SIM은 Subscriber Identity Module로서 즉 유심카드 등록을 통해 이용자의 개인신상정보를 저장할 수 있기에 전화번호 사용자의 정보를 알 수 있다. 당연히 등록이 안 되어 있는 경우는 수신번호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등록되지 않은 510만 유심카드별로 $ 1,000의 벌금을 부과하여 총 $ 5.2 Bill 벌금이 청구되었다고 한다. 현지 정부의 요청에 따른 통신업체의 불이행으로 벌금이 부과 된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규모가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다른 기사를 참고하자면 현재까지 이동통신사의 벌금 중 가장 큰 규모는 미국의 AT&T에게 부여된 $ 100 Mill (약 1,000억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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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berg 자료에 따른 이번 벌금 규모의 비교자료이다. 2015년 나이지리아 정부의 반기 세입이 $ 15 Bill이며 2015년 MTN의 예상 매출은 $ 10.5 Bill이다. 

참고로 2014년 기준 나이지리아 정부의 연간 예산이 $ 23 Bill이기에 MTN의 벌금 규모는 정부 예산의 1/4을 차지하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2014년 기준 MTN 연간 세후 영업이익의 163% 규모의 벌금 부과로 2일 동안 요하네스버그 주식장에서 16% 하락하였다. 

 

캡처(10월 26일 이후 하락세인 MTN 주식 (Source: JSE))-1x-1        (7일 동안의 하락장에서 MTN 시가총액에서 $ 5.2 Bill이 줄었다.) (Source: Bloomberg))

11월 16일까지의 벌금 납부는 현재 연장되었지만 현재까지 나이지리아 정부에서의 벌금 규모 감축에 대한 언급은 없다. MTN CEO는 이번 사태 이후 사임하였다. 다행히도(?) MTN은 $ 94 Mill 금액 지불로 나이지리아 이동통신 라이센스를 2012년까지 5년 연장하였다.

벌금 이후 MTN은 동부 아프리카에 있는 우간다 이동통신위원회의의 요청에 따른 비등록 유선심카드를 사용하는 30만 명의 MTN 고객들의 서비스를 중단하였다. (역시 매가 최고인거다. 때려야 말을 잘 듣는다.)

5대 대통령인 Muhammadu Buhari 대통령이 취임한지 5개월만에 생긴 일이다. 참고로 Buhari 대통령은 취임한지 5개월인데 아직 Cabinet 인사를 공고 하지 않은 상황이다. 예로 재무부 장관 자리가 공석인것 이다. 아프리카 내 제 2의 경제 대국인 남아공 소재의 기업을 견제 하려는 의도로 한 것은 아니겠고 유가하락에 따른 예산 충당 문제가 이번 벌금 사태의 주요 배경으로 보인다.

어떤이는 이번 벌금이 약 $ 1 Bill (1조원)대에서 협의 될것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이동통신 라이센스를 5년 연장한 상황에서 MTN이 나이지리아에 사업 철수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MTN 전체 매출의 37% 그리고 연 2조원의 수익이 나이지리아 사업에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시 현지의 규정을 잘 지키며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 나이지리아 벌금 사태를 보면 어떤 외국 기업이 이 나라에 진출 및 투자를 계획할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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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벌금 규모가 기존 $ 5.2 Bill에서 25% 감축된 $ 3.9 Bill으로 낮아졌다. 납부기한은 12월 31일로 연기되었고 MTN은 추가 감축을 위해 협의 중이라고 한다.  

남아공에서 하루에 2번 신호등이 꺼지는 이유

남아공에 방문할 때면 도착지는 ‘조벅’이라 불리는 요하네스버그이다. (사실 요하네스버그가 소위 경제도시라고 불리우듯 남아공 비즈니스 중심지이기에 다른 곳은 갈 일이 드물다.) 신 도시인 Santon에 위치한 호텔을 주로 이용하는데 지난 6월 방문 때는 Mandela Square인근의 Garden Court Hotel Santon에서 머물었다. Santon은 범죄 발생율이 높아 위험한 조벅 다운타운에 비해 그나마 안전하기에 외국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는 호텔 옵션도 많고 현지 기업들의 빌딩도 많이 입주해 있어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체증이 특히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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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den Court Hotel 방 안에서 본 Santon 풍경>

지난 6월 방문이 남아공 5번째 방문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남아공 정전상황 (대서양 건너 뉴욕타임즈에서 쓴 기사)을 겪게 되었다. 먼저 호텔로 픽업을 오는 기사가 도착 예정 시간 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는데 그 이유가 오는 길에 있는 사거리 신호등이 정전으로 꺼져 지연이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방문했던 파트너사 업체 사무실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엔진 작동 소리가 생소해 물어보니 정전 때문에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고 말해 준다. 한 업체와의 미팅을 끝내고 다음 업체로 이동하는 도중에 맞닿은 다른 사거리 신호등이 정전으로 꺼져 있어 말로만 듣던 교통체증을 경험했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은 작동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운전자들 몇몇 때문에 시간은 더욱 지체 되었다. 블랙 아프리카 국가들 중 지역별 중심으로 뽑히는 동부의 탄자니아 그리고 서부의 나이지리아에서의 정전 경험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남아공에서의 정전경험이라니 솔직히 황당해서 그랬는지꺼져 있는 신호등과 길게 줄 서 있는 차 사진을 못 찍은게 아쉽다.

인프라 측면만 봐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는 마치 미국 또는 유럽의 소도시 느낌이 들 정도로 인프라 개발이 잘 되어 있는데, 이런 곳에서 지역은 매번 다르지만 평균 하루에 2번 정전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그 배경이 궁금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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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on Mandela Square>

20141024_083716<Gauteng 행정구역 (요하네스버그)에서는 고속 전철을 이용할 수 있다.>

도대체 전기가 얼마나 모자라는데?

남아공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기관은 Escom Holdings Ltd (www.eskom.co.za)이다. 2014년 9월 Bloomberg의 기사에 따르면 남아공 전력 수요의 95%를 담당하는 Escom의 생산능력은 42gigawatts인데 실제로 생산량은 33.2 gigawatts라고 한다.

참고로 남아공 인구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5천 만명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전력생산 능력은 얼마나 되는가? 한국은 87gigawatts이고 이에 비해 북한은 7.2 gigawatts 밖에 안된다고 한다

수치상으로 비슷한 인구 수에 한국은 남아공에 비해 약 3배 정도의 전력생산능력을 갖추고 있고  GDP 규모도 따져보면 한국은 ($ 1.41 Trillion이고 남아공은 $ 341 Trillion이다) 약 4배 차이인데…. GDP에 따라 전력생산규모도 따라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GDP가 커질수록 인프라 투자도 커지고 전력수요도 커져가니 정비례하겠지만 신기하다.

재밌는 전력생산규모 수치 정보를 더 추가 하자면 사하라 사막이남 Sub-Sahara Africa 국가들의 전체 전력생산 규모는 남아공의 2배인 88gigawatts로 한국의 생산능력과 비슷하다. 아프리카 국가 중 경제 규모 1위인 나이지리아는 인구가 1억 7천만 명인데 생산능력이 7gigawatts라고 한다. 이는 북한 생산능력과 비슷한 수준이다.(실제로 출장을 통해 방문한 나이지리아는 건물 곳곳마다 석유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어 상당히 시끄러운 소음을 경험하였다. 미국의 전력 생산능력은 1000gigwatts라고 한다. 참고로 미국 인구수는 3억 2천만 명이다.)

누구 잘못인데? 책임자 이리와~

2008년 남아공에서는 5일 연속 정전 사태가 일어나 광산 조업이 중단되는 등 국가 산업 전반이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 했다고 한다. 백인정부 (Apartheid Era)때만 해도 세계적으로 평균 보유 잉여전력은 15%이었지만 당시 남아공은 사용하고도 남는 40% 잉여전력을 인근 국가에 공급하였던 전략 강국이었다.

도대체 무슨 문제때문에 2008년 부터 지속적으로 정전문제가 일어나는 것일까?

주요 요인은 크게 2가지로 하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꼴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의 만연한 부패 정치인들도 인한 자금 유출 및 공사 지연으로 보고 있다.

1994년 흑인인종차별정책 폐지 이후 흑인 정권 (African National Congress 여당)으로 교체 당시에는 수도, 전기, 가스와 같은 공익사업은 정책 중 우선사항이 아니었다고 한다. 인프라 투자 보다는 주택 보급, 교육, 보건 위생 분야 등 흑백간의 삶의 격차를 줄이는 ‘부의 분배’에 더 우선시 되었다. 기존의 화력발전소를 통해 생산되는 전력이 전체 수요의 약 80%를 차지하는데, 2009년 경기 침체 이후 유지 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인 정권 당시 흑인 거주구역이었던 Soweto (소웨토) 시민이 사용한 3억 달러 이상의 전기요금이 미납되고 있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10년 전 전기요금을 탕감해줬던 일로 인해 미납을 해도 처벌이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것으로 보고 있다. 파트너업체의 직원들의 말로는 집권여당의 주요 표층이 Soweto 시민이기에 전기 미납 사태에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미납도 문제지만 ‘전기 도둑’도 문제다. 불법적으로 변압기에 wire를 연결해 전기를 도둑질 하고 재판매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아공은 감전사가 흔한 사망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참고로 합법적인 전기 공급 없이 사는 인구가 전체의 15%이다.

선진국에서의 정치인들의 부패 문제도 종종 보지만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부정부패’이다. 부패 지수를 평가하는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남아공 국가 청렴도 순위는 67위이다. (1위는 덴마크이고 한국은 43위이며 남아공 바로 위에 위치한 보츠와나가 31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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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정권 때의 인종차별 정책도 문제였지만 만델라 대통령 이후 흑인정권이 들어오면서 만연해진 정치인들의 부패는 남아공 경제 발전에 크나큰 걸림돌이다. 현 대통령인 Jacob Zuma의 KZN 행정구역 소재의 Private house 보수에 약 $ 20 Mill (200억 원) 정부 지원금 부담 지출 했다는 스캔들은 현지에서 유명하다.

악순환의 고리

올해 2월에는 전력 보존을 위해 많은 식당들의 전기 공급이 강제로 끊겼다고 한다. 이제 남아공에서는 형광등 불빛이 아닌 촛불 빛 아래 식사하는 로맨스를 때때로 경험할 듯하다. 전력 생산 부족에 따른 정전으로 인한 내수 경제 시장 악영향은 당연한 결과이다. 주요 산업이 제조업과 광산업인 남아공에서 전기가 없으면 공장 가동을 할 수 없으니 낮은 경제 성장율 (올해 2% 전망)과 신용등급 하락은 울며 겨자 먹기인 꼴이다.

전력 생산 부족에 따른 전력 분배 및 정전으로 인한 남아공 사람들의 발전기, 재충전 라이트, 가스 버너 구매 현상도 어찌 보면 안쓰러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기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가 곧 임박한 정전 또는 전력 분배 스케줄을 알려주는 어플이라고 한다. 실제로 Appannie를 통해 알아보니 Top 50위 안에 21위 GridWatch와 36위 EscomSePush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Load Shedding(전력 분배)는 크게 4단계로 나눠지는데 Stage 1은 전국적으로 1000MW 전력 공급을 중단하며 4단계에는 4000MW 전력 공급을 중단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해결까지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쇄신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단기간 안에 이 문제가 해결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남아공에 출장 가 있는 대학 동문인 양 군은 정전으로 호텔에 히터가 나오질 않아 고생을 했다는 톡을 보내왔다. 남은 일정 동안은 신호등 정전으로 미팅에 늦게 도착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