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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프리카의 가능성: 4) 150년의 역사를 품은 레소토(Lesotho)의 Basotho Blankets

아프리카에는 하나의 나라가 타국의 내륙 안에 둘러싸인 국가들이 존재한다.
얼마 전 대통령 선거에 패하고도 정권이양을 거부한 대통령으로 유명한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Gambia)와 남부 아프리카의 레소토(Lesotho)가 그 예이다. (감비아는 대서양 해안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수 있지만, 레소토는 그야말로 남아공 안에 둘러 쌓여 속해 있다.)

남부 아프리카의 레소토 (Lesotho)는 남아프리카공화국 (South Africa) 영토 안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 특징을 갖고 있다. 정식 명칭은 레소토 왕국 (Kingdom of Lesotho)이다. 남한의 3분의 1크기 땅에 200만 명이 조금 되지 않는 인구의 대부분은 바소토족이며 기독교인이다.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더운 날씨를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듯, 아프리카 대륙 안 하얀 눈을 볼 수 있고 스키장이 있는 나라들은 매우 소수이다. 그 중에 레소토가 포함 된다.  

(출처: 조선일보)

이번 글에서는 바소토족만의 특징을 볼 수 있는 바소토족 ‘담요’ (Basotho Blankets)를 소개 한다.

먼저, Basotho Blanket에 대해 British Airline in-flight magazine인 High Life에 16년 10월호에 소개한 글을 국문으로 번역하여 공유 한다.

(저자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Ufrieda Ho이다. 영문 PDF를 제공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더불어 잡지에 소개된 사진은 작가 Thom Pierce의 작품임을 명시 한다. )

<The Blanket that tells 100 Stories by Ufrieda Ho>

최근 들어 몸에 걸치는 담요를 세계적인 패션쇼장 무대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둘러 쌓인 독립 50주년을 맞는 레소토 왕국에서 담요는 150년 이상 선호 되어 왔다. 그 담요는 그들의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마부 사진에서 보듯 일상 생활의 한자락에 속한다.

(Pictured by Thom Pierce)

레소토의 겨울은 마치 면도날처럼 날까롭다. 햇살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고지대에 사는 현지인들은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항상 몸을 둘둘 말아야 한다. 해발 1,000m 이상에 위치하는 협곡들이 존재하는 국가에서 좋은 재질의 바소토 담요의 온기는 그 자체로 축복이다. 양모 담요 안 선명한 색상과 패턴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을 통해 레소토 국민임을 알수 있다. 모든 이들이 하나의 담요를 입는다. 여성들은 허리 또는 어깨에 숄(shawl) 형태로 두른다. 담요의 3분의1을 접어 어깨 위에 이중층을 만들어 두른다. 그리고 턱 밑에 핀으로 고정한다. 남성은 폰초(Poncho) 스타일로 어깨 위로 둘러 고정한다. 담요는 때론 아이들을 엄마들의 등에 업을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오늘날, 레소토에서 바소토 담요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Cape Colony에 도착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모셰셰 1세 왕의 초대를 받아 내륙으로 들어온 1830년대로 시간을 돌려보자. 모셰셰 왕은 줄루족과 보어인들과의 충돌을 피해 오게 된 산악지형을 바수토땅 (Basutoland)으로 선포하였다. 왕은 유럽과 바소토 국간 간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를 열망하였다. 영국 보호령이 되면서 종교도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레소토는 현재 영연방 회원국이다.) 이후 1960대 하웰이란 무역상인이 모셰셰 왕에게 영국에서 제작된 패턴이 포함된 담요를 선물로 제공하였다. 당시 담요는 독특한 문양과 줄무늬를 만들기 위한 짜임 (weaving)에서 발생하는 결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모셰셰왕은 담요를 마음에 들어하였고 그 전까지 입고 있던 털가죽 외투 (Kaross)를 버렸다고 한다. 이후 모든 이들이 왕처럼 줄무늬가 포함된 담요를 갖기 원했다. Aranda Textile Mills의 판매/마케팅 담당자인 Tom Kritzinger에 따르면 이에 의해 이후 담요에는 줄무늬 패턴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소토 담요는 레소토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제수도 요하네스버그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Randfontein에 위치한 아란다 (Aranda) 방직공장이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바소토 담요를 제작하는 제조 라이센스를 보유한다. 역사적으로 레소토왕국에서 사용한 담요는 영국의 Wormaids & Walker의 제품이었다. 그들이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바소토 담요는 그야말로 대히트였다. 당시 사람들은 오직 Victoria England 담요만을 원하였다고 한다.

(출처: http://www.blanketsandweaves.co.za)

브랜드는 현재까지 살아남았지만 Wormaids & Walker 공장은 곧 문을 닫았다. 1920년대 요하네스버그의 두 지역 (Harrismith & Heriotdale)의 방직 공장들은 라이센스를 통해 해당 담요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후 이탈리안 이민자들로 인해 세워진 Aranda 방직 공장이 1988년 독점 라이센스를 보유하기 까지 여러 회사들과의 계약들이 오고 갔다. Aranda의 거대한 공장 안에서 마케팅 담당자 Kritzinger는 다양한 바소토 유산의 담요 브랜드를 보여 준다. 모든 담요들의 크기는 165cmX155cm로 동일하며 입기 위한 완벽한 크기이다. 대부분의 담요는 남아공 내 경매로 인해 구매한 고급 품질인 Merion 양털로 제작 된다. 일부 저가 모델의 아크릴 소재의 섬유로 만들어 진다. 모두 풍요를 나타내는 독특한 세로 줄을 담고 있다. 또한 담요마다 다양한 문양과 색상을 포함하여 이는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Aranda에게 담요는 사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존재는 바소토 문화, 레소토 왕실과 레소토 국민들과 특별한 신뢰 관계 그 자체이다. 모든 새로운 디자인은 Aranda 팀에 의해 만들어 진다. 2007년에는 레소토 왕실의 후계자인 Lerotholi 왕자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Motlatsi 디자인을 하였고 2016년 레소토 독립의 50주년을 기념하는 Spitfire 에디션을 제작하였다. 50주년 기념 디자인은 역사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레소토는 영국의 24 Spitfire 전투기를 위해 모금을 하였다. 해당 전투기는 현재도 존재한다.

(Spitfire 전투기 Edition)

바소토 담요의 대표 디자인 Seanamarena는 옥수수 속대(Corncob)의 모양에서 모티브가 되었다. 레소토에서 옥수수 속대는 풍요과 부를 상징한다. 처음에는 부족장들만 입었고 적은 수량만 제작 되었고 많은 이들이 원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적은 수량만 제작 되었다.

(옥수수 속대는 풍요와 부를 상징한다. Pictured by Thom Pierce)

일상생활 용도인 Sefate와 Morena 브랜드도 있다. Kharetsa는 레소토의 Maluti 산맥에서만 존재하는 나선형 알로에 식물을 모티브로 제작 되었다. 알로에 디자인을 중시으로 바소토인들의 모자와 방패 디자인이 둘러쌓인 디자인이다.

(Kharetsa 담요의 중심에는 나선형 모양의 Spiral Aloe 문양이 있다.)

남아공 블룸폰타인 (Bloemfontein)의 국립미술과의 큐레이터인 Elmar du Plessis는 2014년 바소토 담요 컬렉션의 전시회가 개최되었을 때 바소토 담요의 의미와 문화적 중요성에 대해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당시 전시된 담요들은 Robertson가로 부터 받아 미술관이 장기 임대 중에 있다. (Charles Hedry Robertson이 Seanamarena 담요 디자인 창시자이다.) 오리지널 Seanamarena 디자인은 풍요와 부의 의미를 나타내는 옥수수 속대와 벌집 모양을 담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디자이너의 이니셜인 CHR에서 유래한 Chromatic 디자인으로 불리었다.

그가 만든 디자인 중에는 1988년 교황 요한의 레소토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Batho Ba Roma 담요도 있었다. 또한 세계 2차 대전의 영국군과 동맹군 그리고 전장에서 죽은 바소토인들에 경의를 표하기 위한 Badges of Brave 담요도 컬렉션에 포함 되었다.

 (Badges of Brave Edition Basotho Blanket을 입은 남성)

바소토 담요는 때때로 인기가 시들어 지는 경우도 있었다. 1980명대 중반에는 질병으로 가축 살처분으로 전통 소가죽 겉옷을 만들 수 없게 되자 다시 바소토 담요가 필요하게 되었다.

1940년에서 1950년대에 바소토 담요는 유행에 한창 뒤쳐졌다. 바소토인들은 당시 남아공으로 이주하여 금광에서 일을 하였다. 그들이 입고 있는 담요는 무리에서 그들의 정체성 바소토인임을 구분짓게 해주었다.

요즘 바소토 담요는 유명 디자이너 제품으로 재구상 되며 패션 액세서리로 활용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레소토 출생의 남아공 케이트타운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Thabo Makheta는 2011년 경주마 행사를 위한 디자인를 고민하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주제는 Royalty(왕족)이었다. 아프리카 왕족에 대한 무엇인가를 디자인 하고 싶었고 그 때 바소토 담요를 옷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고안했다고 한다.

2016년 Makhetha의 Starburst Kobo 코트는 Design Indaba가 선정한 Most Beautiful Objects in South Africa (MBOISA)에 선정 되었다. 그녀는 뉴욕과 영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 박물관으로 부터 영구 보관을 위한 작품을 제공을 요청 받았다.

 <Basotho Blankets Inspired Couture>

150년 전 영국에서 넘어온 이후 바소토족의 담요에는 기능을 벗어나 출생, 성인식, 결혼, 장례에 건네지는 선물로서 그들의 삶 속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들 삶 속에 녹아져 있다. 아름다운 색의 조합과 문양이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많은 이들은 레소토 국가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남아공에 비해 관광 자원이 부족한 레소토는 여행지로 잘 소개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바소토 담요를 통해 남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레소토가 알려지고 있다.
최근 바소토인들의 삶의 일부분인 Basotho 담요에서 영감을 받은 디지이너 컬렉션이 무대에 선 보였다. Basotho 담요는 문화유산의 가치, 패턴, 색상 그리고 문양의 의미가 함께 녹아지며 이제는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 받고 있다. 
(Louis Vuitton 2012 F/W에 소개된 Blanket Coat)
(Louis Vuitton 2017 S/S 컬렉션에서 선 보인 위의 셔츠와 담요에서는
오른쪽 Basotho 담요(Seanamarena디자인)에서 모티브를
받았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다. Basotho 담요는 거실과 침실 등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 가능하다.
네덜란드의 가구 인테리어 업체인 Noush는 Basotho 담요 직물을 활용하여 쿠션(Cushion)을 판매 하였다.
남아공 소재의 Mountain Kingdom은 Basotho 담요의 의미와 디자인을 국제 무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Basotho 담요를 생산하는 Aranda 방직 공장의 제품의 독점 수출업체로 최근 2015년에는 마이애미에서 열린 Art Basel 행사 동안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인 BASE에 전시 되었다.
남아공 Cape Town 소재의 의류 브랜드인 Unknown Union의 디자인의 중심에는 아프리카 중심의 전통 미가 담겨져 있다. 이들도 Basotho 담요를 활용한 제품을 선 보였다. 수익의 일부분은 레소토 고아들을 위한 NGO단체 Sentebale에 기부 된다고 한다.
Unknown Union에서 만든 Basotho Jacket을 살펴보자.

아직도 많은 이들은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 전쟁, 가난, 기아 등 부정적 인식과 함께 사파리 관광, 더운 기후 등 관광 측면의 관점에 갇혀 있다. 인류의 시작점인 아프리카 대륙에는 다양한 민족, 언어, 문화가 공존 한다. 특히, 오랜 역사 속에서 발전 되어 온 그들의 역사와 문화 유산은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Basotho인들에게 담요는 Kobo ke bophelo 라고 설명한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The blanket is Life이다.

이제는 그들의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통해 아프리카와 각 나라들이 알려지길 소망한다. 상업적 가치로서 재탄생되어 그들의 스토리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퍼져간다면, 더 발전적이며 효과적으로 아프리카를 알릴 수 있지 않을까? 

레소토의 경우 바소토 담요 (Basotho Blanket)가 대표적 예이다.

참고 문헌 
http://www.mountainkingdom.org/news/2016/8/16/from-the-mountain-to-the-runway-spreading-the-basotho-blanket-worldwide
http://www.the-other.info/2015/south-africas-tribal-basotho-blanket-for-herdsmen-and-royals-alike
http://www.vogue.com/article/basotho-heritage-blankets
http://city-press.news24.com/Trending/Fashion-The-world-in-a-Basotho-blanket-20150719
http://www.jozilife.co.za/design/the-blanket-is-life/

(연재) 아프리카의 가능성: 2) Tradition(전통)을 Contemporary Art(현대 미술)로 발전시킨 남아공 예술가 Esther Mahlangu

아프리카 부족마다 갖고 있는 생활 양식에서 그들만의 정체성을 볼 수 있다. 정체성은 고유의 전통 예술을 통해 비춰진다. 현대 미술로 번역 되는 Contemporary Art(현대 미술)와 Traditional Art (전통 예술)의 차이는 무엇일까? 선조들의 전통적인 기술 및 생활 양식이 세대를 넘어 현재까지 유지 될 때 현대 미술로 인정 받을 수 없는가? 서구 중심의 미술만이 진보하고 인정 받는 것인가?때때로 관광객들의 기념품으로 취급 받기도 하는 전통 예술품은 현대 미술이라는 단어 속 ‘고급의 미’가 부족한가? 알려진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 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대답은 남아공 예술가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남아공 Ndebel(은데벨레) 부족 출신의 Esther Mahlangu(에스더 마흐랑구)이다. 그녀는 은데벨레 여성들의 전통인 추상적이며 기하학적 디자인과 페인트 기법을 현대화하였다.

잠시 아래 세 명의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보자. 모두 추상학적 기하학 현대 예술의 범주에 속한 작품들이다.

 (Sol Lewitt의 작품) 

 (Damien Hirst의 작품)

 (Esther Mahlangu의 작품)

첫 두 작품은 현대 예술계의 유명인사인 Sol LeWitt과 Damien Hirt의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남아공 은데벨레족 출신의 현대 미술 아티스트 에스더 마흐랑구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현대 미술 작품으로서 서구의 갤러리 및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미술 수집가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이들도 미국의 팝아트 선구자로 불리는 현대 미술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Andy Warhol(앤디 워홀)을 떠올릴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BMW Art Car를 기억하는가? Esther Mahlandgu는 BMW Art Car Collection의 11번째 아티스트로 1991년 BMW 525i model을 대상으로 작업하였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으로서 BMW Art Car를 디자인한 첫 아티스트이었다. (참고로 BMW Art Car Collection은 1975년 시작되었고 앤디 워홀은 1979년 5번째 아티스트로 뽑혔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부족의 전통으로 전해진 예술과 현대 자동차 기술과의 결합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하였다.

“My art has evolved from the tribal tradition of decorating our homes… The patterns I have used on the BMW marry tradition to essence of BMW.”

25년 뒤 BMW와 두번째 art collaboration을 진행하였다. 최근 런던에서 열린 Frieze Fair 경매에 부쳐질 BMW 7시리즈 내부의 wood Interior (나무 소재의 실내 내장)을 그녀만의 특유의 선명하고 밝은 패턴으로 장식하였다

04-bmw-art-car-1979-m1-group-4-warhol-01_1024x768 (Any Warhol의 BMW Art Car, BMW M1, 1979)
 (Esther Mahlangu BMW Art Car, BMW 525I, 1991)
bmw-individual-7-series-by-esther-mahlangu-16-750x500 bmw-individual-7-series-by-esther-mahlangu-18-750x562 (BMW Individual 7 Series by Esther Mahlangu)

<Tribes in South Africa and Ndebele Tribe>

남아공 인구는 약 5,400만 명으로 이 중 80%가 흑인이다. 하지만 이들도 세부적으로는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보유한 부족 집단으로 나뉜다. Esther Mahlangu는 남아공 내 전통 부족들 중 Ndebele(은데벨레) 부족 출신이다. 그녀의 출신인 은데벨레 부족과 함께 전체적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내 타 전통 부족들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남아공에는 대표적으로 Zulu(줄루), Xhosa(호사), Ndebele(은데벨레), Sotho(소토) 부족이 있다.

Zulu 부족은 현재 콩고 지역의 부족장의 후손들로 알려져 있으며 Zulu 의미는 낙원의 백성이란 뜻을 갖고 있다. Zulu 부족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과거 집권 여당 ANC(Africa National Congress)의장이자 현 대통령인 Jacob Zuma이다. Xhosa족은 Zulu족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Xhosa족 출신이다. Sotho족은 남아공 국경 안에 위치해 있는 Lesotho 국가명에서 유사함을 볼 수 있듯, 지리적으로 Lesotho 인근 지역에 거주 하고 있다.

(Zulu족)

(Xhosa족 여성)

(Ndebele족)

Ndebele(은데벨레)족은 화려한 색상의 전통 의상과 집 외벽 장식으로 인해 유명하다. 그들만의 패턴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남다른 예술적 감각과 색채감으로 남아공의 피카소로 불리기도 한다.

<Ndebele and Mural Paint>

에스더 마흐랑구는 아홉명의 자녀 중 첫째로 1935년에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도 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대로 가정주부로서 가족을 보살피며 대부분의 시간을 벽화 그림과 구슬세공으로 시간을 보냈다. 과거부터 은데벨레족 여성들은 특히 건기인 겨울에 집 외벽을 벽화 그림으로 장식하였다. (여름인 우기 기간에는 자연 색소들이 씻겨 지워지기 때문이다.) 적토, 흑토, 황토, 석회암 등 자연에서 얻은 색소와 새의 깃털 및 손가락을 이용하여 특유의 패턴을 그려가며 외벽을 꾸몄다. 소의 배설물은 결착제로서 색소가 외벽에 결착되는 역할로 사용되었다. 일부다처제인 은데벨레족 특성상 여성들은 개개인의 디자인과 색상을 통해 자신만의 기술과 창의력을 경쟁하였다. 10살이 되자 그녀의 어머니와 조모가 벽화 그림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벽화 그림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외벽 장식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벽화 그림에는 전통적으로 집안의 특정 행사 또는 의미 있는 일들을 외부에 표현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은데벨레족에게 가옥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다. 거주하는 가족 구성원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매개체 역할이 되었다.

그리고 그 벽화 그림이 에스더 마흐랑구를 은데벨레 부족 여성에서 현대 예술가로서 재탄생 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녀에게 집은 그 자체의 거주 기능 보다 더 큰 의미가 포함된 공간이다.

<A Road To Canvas From Wall Paint>

1980년 후반까지만 해도 세계의 예술 산업은 유럽과 북미의 아티스트만을 조명하는 서구 중심으로 움직였다. 1989년 파리 퐁피두 센터의 관장이었던 장 위베르 마르탱 (Jean-Hubert Martin)은 기존의 서구 중심의 현대 미술 흐름에서 벗어나는 차원으로 ‘대지의 마법사’ (Magiciens de la Terre)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전시에서는 50명의 비서구 출신 미술가의 작품과 50명의 서구 출신 미술가의 작품이 동일한 비중으로 전시 되었다. 전시 준비를 위해 1986년 다섯 대륙에서 50명의 비서구 출신 미술가를 발굴하기 위해 퐁피두 센터의 연구원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했다. 당시 에스더의 거주지를 지나던 연구원들의 그녀의 외벽에 그려진 그림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후 몇 개월 후 그녀는 100인명의 대지의 마법사 중 1인으로 뽑혀 프랑스로 초대 받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50세였다. 반세기를 은데벨레족의 평범한 주부가 현대 미술가로 재탄생하는 계기였다.

참고로 당시 남아공에서는 백인 정권 아래 유색인에 대한 고립 정책을 포함된 인종차별 정책이 진행되었던 시기이었다. 고립 정책이란 유색인 분류에 속하는 흑인, 아시안 및 인도인들을 백인들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 살게 하는 정책이었다. 은데벨레족들도 특정 지역에 고립되어 거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만의 외벽 그림을 한 곳에 볼 수 있는 모습이 남아공의 찾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코스로 포함 되었고 이로 인해 퐁피두 센터 연구원들이 에스더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펼친 백인 정부가 의도치 않게 에스더를 세계의 주목을 받게 도와 준 것이었다. 또한 당시 유색인이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매우 제한 되어 있던 시기였지만 퐁피두 센터의 초대로 프랑스를 방문 할 수 있었다. 남아공의 아픈 민주주의 역사의 배경을 고려해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사례이다.

그녀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방문했을 시 그녀의 집과 동일한 크기의 설치물이 준비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눈을 비볐다. 그녀는 항상 작업하던 스타일대로 설치물의 외벽을 그녀만의 두터운 패턴과 화려하고 강한 색상으로 꾸몄다. 전시를 통해 그녀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며 현대 미술가로서 소개 되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통해 은데벨레의 전통 생활 양식이 현대 미술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부족 사회에서 발견된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평가 대상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국한 되었다. 하지만 에스더 마흐랑구는 본인의 작업을 통해 개별적인 현대 예술가로서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동시에 은데벨레 부족을 대표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Esther Mahlangu 집 입구) 

(퐁피두 센터에 전시된 설치물)

(the artist’s fondest memories of her visit to Paris in 1989)

<Distinct Styles of Esther Mahlangu>

그녀의 작업 (은데벨레족의 작업)에서는 몇가지의 분명한 디자인 방식이 나타난다. 두터운 색상 처리와 기하학적 패턴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하학적인 구조와 대칭이 추상적인 작품에 녹아져 있다. 패턴 속 리듬과 대칭의 조화도 볼 수 있다. 특히 에스더 작품의 특징이 되는 기하학 구조는 면도날 (Razor Blade)이다. 면도날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할례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이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매력적인 두터운 라인과 화려한 색상을 안은 기하학 구조로서 표출된다. 면도날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180도를 돌리더라도 기존 그림과 동일하게 모습을 볼 수 있다.

(면도날 형식의 디자인 중심을 기준으로 180도를 돌려도 원본과 같다)

최근에는 전통 양식에서 벗어나 관광객들 상대로 작품이 만들어지면서 자동차, 사람, 동뭉, 비행기 등 구상적인 물체들이 작품에 포함 되기도 한다.

<Open for New Possibilities>

에스더 마흐랑구는 그녀의 작품을 보기 위해 남아공까지 올 수 없는 애호가들을 위해 캔바스로 작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녀는 캔바스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미국 및 유럽 등 많은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그녀의 전시가 개최 되었다. 캔버스 (Canvas)에서 벗어나 스케이트 보드 (Skate Deck)과 마넹킹에도 작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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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상업적으로 많은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 해오고 있다. 앞서 보인 BMW Art Car는 대표적인 Collaboration (협업) 예이다. 이와 함께 브라질과 스위스 신발 기업인 Melissa와 Eytys와 디자인 협업을 진행하며 패션 측면의 상업적 가능성도 인정 받고 있다. Eytys와 함께 협업한 신발(Sneaker)은 2015년 파리 패션위크(Fashion Week) 때 선보였다. 영국 항공 기업인 British Airline과 이태리 자동차 기업인 Fiat과도 작업을 함께 하였다. 최근에는 폴란드산 프리미엄 보드카인 벨베데어(Belvedere)의 병 디자인 작업을 하였다. 미국 가수 존 레전드 (John Legend)도 함께 동참한 이 협업은 아프리카 내 에이즈(AIDS) 퇴치를 위한 Red Campaign (가수 U2의 보컬 Bono가 창설한 에이즈 퇴치을 위한 자선 모금 운동) 아래 제작 되었고 판매 수익의 50%는 에이즈 퇴치 Global Fund기금으로 사용 된다고 한다

mahlangu01a1 %eb%8b%a4%ec%9a%b4%eb%a1%9c%eb%93%9c(Melissa X Esther Mahlangu)

shoes esther(Eytys X Esther Mahlangu)

af(British Airways X Esther Mahlangu)the-chronicles-of-ndebele-artist-esther-mahlangu3 (Fiat X Esther Mahlan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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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legend-esther-mahlangu-belvedere-red (Belvedere x Esther Mahlangu x Red Campaign)

남아공 음프말랑가 (Mpumalanga) 지역 내 에스더 마흐랑구가 거주하는 Mabhoko 지역으로 들어서면 도로 위에 세워진 “Esther is Here” 이란 광고판을 볼 수 있다. 전시 활동을 위한 해외 체류 이외에는 현재 그녀는 유명해지기 전 부터 살아온 마을에 거주 하고 있다. 많은 은데벨레족의 젊은 세대들이 도심으로 떠나기에 그들만의 전통인 구슬공예와 그림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위해 그녀는 전통 보존을 위해 대부분 시간을 후학 양성에 투자하고 있다.

그녀의 집을 가보면 거실이 곧 전시관과 같아 보인다고 한다. 그녀에게 예술 활동과 삶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마치 그녀가 세상이 주목을 받기 전인 50세까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80세가 넘었지만 지금도 작품 활동에 열정이 넘친다. 그녀의 작품 전시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그 날이 고대해 본다. 아니면 그녀가 거주하는 마을을 방문하도록 계획을 세워야겠다.

* 참고 자료

  • https://www.bmwartcarcollection.com/
  • http://www.bmwblog.com/2016/09/05/bmw-individual-7-series-esther-mahlangu/
  • http://www.vgallery.co.za/estherpress/emcat.pdf
  • htm http://34fineart.com/Esther_Catalogue.pdf
  • http://34fineart.com/press/esther80/indx.htm
  • http://www.ditoday.com/articles/articles_view.html?idno=18339
  • http://www.bmwblog.com/2016/09/05/bmw-individual-7-series-esther-mahlangu/)

(연재) 아프리카 가능성: 1) 서부 아프리카의 Adinkra(아딘크라) Symbols

<아프리카 가능성: 서부 아프리카의 Adinkra Symbols>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속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아프리카를 생각 할 때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도 미디어에 비춰진 테러, 기아, 질병, 가난 등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차 있을 것이다. 서구 중심의 사고 속에서 아프리카는 도움을 주어야 하고 아직도 수준이 낮은 국가들로 모여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DNA을 활용한 유전학 데이터 분석에 따라 현존 하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조상이 고대 아프리카에 살았던 여성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문명 동안 축적해온 그들의 문화를 재조명하며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알리고자 한다.

첫번째는 현재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지역에 존재하던 풍부한 황금 자원으로 찬란한 문명을 펼친 Akan 종족의 Adinkra 문양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Gyaman 제국 그리고 Asante(아샨티) 제국>
Akan족은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 현재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지역을 장악했던 종족이다. 각 지역별로는 왕국이 있었는데, Gyaman 왕국은 현재의 코트디부아르 위치에 존재 하였다. Adinkra 문양의 기원이 바로 Gyaman 왕국이라고 알려져 있다. Asante 전설에 따르면 Adinkra는 Gyaman 왕국의 왕 이름인 Nana Kofi Adinkra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가나에 위치한 Asante 왕국 근처에 있는 Gyaman 왕국간 전쟁이 있었고 이에 패한 Gyaman 왕을 포로로 잡혀 Asante 왕국의 수도인 Kumasi에 끌려가 죽음을 맞게 된다. 이후 그의 왕국은 Asante 왕국에 합병이 된다. 전쟁이 일어난 배경에는 Asante 왕국의 건국 신화에 포함된 ‘황금의자’ (Golden Stool)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들만의 건국 신화이자 왕국의 상징인 ‘황금의자’를 Gyaman 왕국에서 복제하여 만든 것이 전쟁 발생한 이유였다.

60여가지가 넘는 Adinkra 문양과 의미들을 소개하기 전에 Asante 왕국의 ‘황금의자’에 대해 알아보자.

<Golden Stool>
Asante (아샨티) 왕국은 1670년대에 오데이 투투 (Osei Tutu) 왕에 의해 주변 부족국가들을 연합하여 건립 되었다. 건국 신화에는 하늘에서 황금 의자 (Golden Stool)이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황금의자는 현재까지도 아샨티 왕국의 상징이다. 왕조차 특별한 날에만 그 의자에 앉을 수 있으며 귀하기에 의자 위에 따로 올려 놓는다. 즉 의자를 의자에 앉혀두는 것이다. 이 의자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19세기 영국과 아샨티족들 사이의 전쟁의 원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golden-stool (16대 아샨티족장인 Osei Tutu 2세와 그의 옆에 놓여 있는 의자 옆에 놓여진 Golden Stool)

당시 현재의 가나 지역 통치를 위해 머물던 영국 총독은 아샨티족들이 모든 권력은 그들에게 양도하지만 ‘황금의자’에는 절대로 앉을 것을 권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고의 권위로 신성하게 유지되는 황금의자에 올라 앉게 되자 아샨티족 전체가 무력적으로 반발하게 되었다. 아샨티족들에게는 왕이 앉는 의자가 아닌 아샨티 사람들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자 영혼이 깃든 신의 정당이었던 것이다. 외부인에 의해 더렵혀지고 파괴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민족의 정체와 정신이 파괴됨과 동일한 의미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무지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인 실수 사례이다.

<Adinkra Symbol>
Adinkra(아딘크라)는 Akan족 언어인 Twi언어로 작별 인사를 의미한다. (Akan족은 더 넓은 의미의 민족이며 Asante족이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Asante족들은 전통적으로 특히 장례식 때 Adinkra 문양으로 꾸며진 옷을 입었다. 현재는 Adinkra 옷을 Asante족들만 입지 않고 가나 내 다양한 인종들도 축제, 결혼식 등 사교 행사 참석시 입는다고 한다. 검정색, 갈색, 붉은색 등 어두운 색 계통의 Adinkra는 장례식 행사에 주로 입고 밝은 색상의 옷감은 평소 또는 사교 행사에 주로 입는다고 한다.

Adinkra 문양을 통해 Asante족들의 역사, 철학 등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속담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문화 속에서 속담을 사용하는 것이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Adinkra 문양은 원래 손에 그려 넣던 것을 도장으로 만들게 되었고 나중에 이 도장을 찍은 직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81-17-472_02c(Adinkra 문양이 포함된 직물)

예를 들어 문양 중 Sankofa 문양은 ‘Se wo were fin a wo sankofa a yennkyi’란 속담과 연계되어 있다. 이 뜻은 영어로 ‘reach back and get it’이란 의미로 해석하자면 과거에서 배운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using past experience to build the future 또는 you can always correct your mistakes로 해석 할 수 있다.

sankofa2(Sankofa 문양은 2가지 형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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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의 Adinkra 문양은 전통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심미적인 문양과 그 안의 의미를 활용하여 패션 디자이너, 조각가 등 예술가들의 작품에 사용된다. 가나의 몇몇 회사들은 기업의 상징을 Adinkra 문양으로 부터 착안하기도 한다.

c360_2016-06-25-12-42-59-510 (가나 아크라 국제 공항 속에 있는 Adinkra 라운지 입구 모습)

c360_2016-02-28-20-35-52-094 (Adinkra Lounge 내 벽에 걸려 있는 문양에 대한 소개 자료)

개인적으로 문양 자체와 의미가 마음에 드는 Adinkra 문양을 소개한다.

1 2 3 4 5 (Picture Link)

<60여가지가 넘는 Adinkra 문양에 자료 링크>
링크:http://www.stlawu.edu/gallery/education/f/09textiles/adinkra_symbols.pdf
링크:http://www.siliconafrica.com/african-symbols-for-creative-design/

<상업적 가능성>
아프리카 가능성으로 Adinkra 전통 문양을 꼽은 이유는 인류 역사의 시발점인 아프리카에서 형성된 문명과 그 안에서의 예술의 가치가 전통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상업적으로 재탄생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래 Adinkra 문양을 활용한 패션 제품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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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Adinkra 문양이 현대 미술 작품 속에서도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나 출신의 화가 Owusu Ankomah는 Adinkra Symbol를 모티브로 삼아 캔버스에 작품을 그리는 예술가이다. 최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열린 Art X Lagos 전시회에서도 그의 작품이 전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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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 활동 관련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링크: http://www.octobergallery.co.uk/artists/owusu-ankomah/index.shtml

탄자니아의 팅가팅가 (Tinga Tinga)

아프리카 54개국 중 처음으로 방문한 나라가 탄자니아 (Tanzania)이다. 그동안의 방문횟수를 세어보니 어느새 5번이나 되었다.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처음에는 동물 (특히 기린) 목각품 수집에 빠져들었는데 우연히 보게된 아프리카 특유의 유화 그림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통시장에 방문할 때마다 구경만 하다가 4번째 방문 때는 지인에게 색감이 좋은 마사이족(Masai) 그림을 구입하여 선물하였다.

20141109_173720

탄자니아 특유의 회화 그림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때마침 아프리카 미술관에서 후원하여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아프리카 현대 미술전’에 다녀왔다.

관람을 통해 알게 된 탄자니아 화가들로는 릴랑가 (George Lilanga) 팅가팅가 (Edward S. Tingatinga), 실바 (John Da Silva)가 있는데 그 중 팅가팅가에 대해 소개 하고자 한다.

Edward Saidi Tingatinga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는 모잠비크의 북부 지역과 맞닿은 탄자니아의 남부 시골지방인 나모체리아 (Namochelia)에서 태어났다. 현재 지역 이름은 나카판야 (Nakapanya) 지역으로 바뀌었다. 개신교를 믿는 마쿠아(Makua)족의 어머니와 무슬림이자 느긴도 (Ngindo)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배경에 의해 그의 이름은 부모의 종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Edward는 개신교식 이름이고 Saidi는 이슬람교식 이름이다.)

1950년대 고향을 떠나 탄자니아 본토 탕가 지역의 농장일을 하였고 이후에는 삼촌의 소개로 영국인의 집에서 요리사도 하고 정원관리사 일도 하였다. 1968년도 부터는 건축자재 및 시멘트 조각과 에나멜 페인트를 이용하여 사바나 풍경과 동물들을 주제로 유쾌하면서도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유럽계 현지 거주자들 사이에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이후에는 런던 갤러리에 100점 이상의 그림을 팔면서 더욱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와 그의 아내의 친척들을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안타갑게도 그의 나이 마흔살에 강도로 오인한 경찰에 의해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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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현대 미술관의 팅가팅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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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의 그림들>

팅가 팅가의 제자들

미술전에는 생에 그가 양성한 제자들의 그림들도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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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친지들을 중심으로 양성된 제자들의 커뮤니티를 Tinga Tinga Art Cooperative Society라고 불리운다. 웹상에서의 정보가 부족하지만 Tingatinga.org에서는 그의 제자들에 대해 자세히 소개 한다. 

미술전에서 주로 소개된 제자는 Omary, Zuberi 그리고 Mkura이다. 이쯤 되면 소장가치에 대해 질문이 나올만 한데, 그림을 관람을 하면 듣던 얘기로는 Omari와 Zuberi의 그림이 소장가치가 있다고 한다. Tingatinga.org에서도 이 두명의 화가를 the most creative artist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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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gatinga by Daimu Zub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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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gatinga by Saidi O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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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gatinga by Abdul Mkura>

Tinga Tinga Tale

팅가팅가 특유의 화풍 속 동물들을 주제로 케냐 방송국과 영국 BBC의 합작으로 4세에서 6세의 소아 대상 Tinga Tinga Tales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져 방영되었다. 한국에는 EBS를 통해 방영되었다.

과연 팅가팅가 예술인 협동조합의 화가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 했겠지만 제대로된 보상과 저작권 계약이 이뤄졌을지 의문이다.  

연희동에 위치한 쏘울 오브 아프리카 (SoA)에서는 갤러리를 통해 국내에 탄자니아 화가를 소개와 함께 저작권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현지 화가들에게 저작권에 대해 교육도 하고 저작권 계약을 통해 제대로된 권리를 찾아 주기도 하며 서브라이센스를 통해 화가들의 그림을 활용한 다양한 파생 상품 (엽서, 다이어리, 큐션 등)을 만들어 화가들에게 부수입도 제공하는 등 탄자니아 화가들과 협력관계를 넓히고 있다고 한다. 

벌써 다음 탄자니아 방문이 기다려진다. 탄자니아 예술인 협동조합 (Tinga Tinga Art Cooperative Society)도 방문하고 싶고 Omary와 Zuberi 화가를 직접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