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프리카의 가능성: 3) 서부 아프리카의 음악: Afrobeat(s)

<Music is life>
우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세가지 요소를 의, 식, 주로 교육 받았다. 하지만 원시 시대를 거쳐, 산업화, 인터넷 시대를 지나 4차 산업 시대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제 생활의 기본 요소는 의식주만이 될 수 없다. 어떤 이에게는 여행이 본인의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요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음악이 그의 삶 자체일 수 있다. 음악은 더 이상 연주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본인이 듣는 음악(장르)은 그들의 성격과 취향 또는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햄버거 가게, 쉐이크쉑, 본사에서는 매장 안에서 트는 노래를 직접 선별한다. 모든 지점에서는 동일한 음악이 틀어진다.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과 함께 매장 안에 울려퍼지는 ‘소리’ (음악)는 그들의 문화와 브랜드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리는 ‘메세지’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특정 음악과 장르를 알아채는 낯선 이가 아파트 이웃보다 더 반가웠던 느낌이 있지 않는가. 때론 마음 먹고 시작하는 운동을 위해 빠른 박자의 음원을 선곡하듯, 우리의 삶에 음악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Music is life.

인터넷 등장 이후 우리 모두 10시간 비행 거리가 넘는 지역에 관한 뉴스를 원하는 시간에 찾아 볼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 제국시대에 비하면 현재 국경의 의미는 매우 희미하다. 글로벌 시대 속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음악’을 꼽을 수 있다. 미디어에서 강조하는 한류 그리고 KPOP의 영향력이 그 예다. 한국의 대표 가수인 싸이의 행보를 보자.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와 그 ‘음악’을 통해 유투브 조회수는 이미 27억 건 이상이며 유명세를 통해 미국 진출로 이어졌다. 이 후 ‘젠틀맨’과 ‘대디’ 등 후속곡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다. 언젠가 강남역에는  강남 스타일 동상이 세워졌다.  아프리카 현지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Samsung’을 외친 그들이 이제는 ‘Gangnam Style’ 춤을 보여 준다. 음악의 파급력은 우리 상상 이상이다. KOREA AID가 한국을 알리겠는가? Gangnam Style이 한국을 알리겠는가?

아프리카의 다양함은 음악 장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만의 리듬을 녹여서 변형한 Afro-pop, Afrobeats, Afro trap, Afro Rock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는 Afrobeat와 현지 아티스트를 소개 하고자 한다. 또한, 바다를 건너 유럽과 북미의 유명 아티스트와의 작업과 함께 울려 퍼지는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력 사례를 소개 하겠다. Afrobeat를 통한 아프리카의 가능성을 알아보자.

<Slave Trade, African Music and Billboard>
현대 대중 음악의 주요 장르들 (Soul, Hip Hop, Rock 등)은 모두 흑인 음악 영향 아래 발전되어 왔다.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 좋아하는 장르 중 소올, 블루스, 재즈, 살사, 룸바가 속해 있을 것이다. 다양한 현존의 현대 음악장르들은 과거 노예무역 시대에 아메리카 (미주/라틴)에 넘어간 이들과 현지 문화와 융합되며 발전 되었다. 대표적으로 룸바(Rumba)는 그들만의 원시적인 춤, 특유한 리듬 및 음과 라틴 아메리카의 폴라 리듬이 더해지면서 탄생 되었다. 룸바 댄스는 최근 UNESCO의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미국 남부 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버티기 위해 불렀던 ‘노동요(Field Holler)’는 향후 가스펠 (Gospel)과 블루스(Blues)로 발전 되었다. 이후 재즈(Jazz)도 탄생 되었다. 재즈에서 더 대중적인 형태로 발전된 음악이 리듬앤블루스 (Rhythm and Blues, R&B)이다. 그들의 ‘한’을 표출하고자 했던 음악들이 현재 대중음악의 장르들로 파생되었고 빌보드차트 대부분을 차지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흑인들이 쌓은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예 12년 영화 중 목화 농장 속 흑인 노예들의 노동가 장면>

<Fela Kuti: King of Afrobeat>
송기철 음악 평론가가 네이버 음악에 기고한 ‘월드 뮤직의 정점, 서부 아프리카 음악’ 서문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아프리카 음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 가운데 특히 서부 아프리카 음악은 현재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을 이끌고 있다. 영국의 월드 뮤직 잡지 ‘SONGLINES’의 편집장 조 프로스트 (Jo Frost)는 “서부 아프리카 음악은 현재 월드뮤직의 최정점에 서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서부아프리카의 대표 음악 장르인 Afrobeat은 1970년대에 탄생 되었다. 가나에서 시작된 highlife와 나이지리아의 Yoruba부족의 음악을 미국의 Funk와 Jazz와 융합한 형태의 새로운 음악 장르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 때 넘어온 서구 음악에 타악기 연주가 가미된 리듬을 혼합하는 응용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월드 뮤직으로 발전시켰다. Afrobeat는 현재의 가나,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을 중심으로 유명해지며 대륙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Afrobeat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Fela Kuti를 꼽는다. 1938년생인 그는 Afrobeat의 창시자이다. 중상층 가정에서 자란 그의 음악인생은 영국의 음악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 되었다. 의대 진학을 위해 영국에 보냈지만 그는 음대로 진학하였고 트럼펫 연주와 함께 Jazz와 highlife 음악의 혼합 매력에 빠지며 연주자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이후 음반 녹음을 위해 방문한 1969년 미국 LA에서 겪게 된 급진적 흑인 인권 운동 (Black Panther Movement)과 James Brown의 Funk 음악에서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Afrobeat 모습이 갖추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그는 Afrika 70 밴드를 결성하고 미국 펑크와 재즈음악에 요루바 (Yoruba) 리듬을 녹인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었다.

<Fela Kuti>

그는 부족 음악의 색깔을 지우고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사회 정치 비판 메세지를 가사 속에 담았다. 특히 70년대의 군부 정권에 항의하는 메세지가 주로 포함 되며 Afrobeat는 항의 운동 가요로도 입지를 다졌다. 이와 함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현지인들의 자립을 강조하는 사회적 운동에도 힘썼다. 군부 정권에 의해 여러 차례의 감옥 생활에도 그의 음악 인생을 계속 되었다. 1997년 그의 나이 5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Afrobeat는 월드 뮤직으로서 후대 아티스트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미국의 유명 힙합 아티스트들은 그가 연주했던 비트를 배경으로 사용하여 음반을 제작 하였다. )

그의 앨범 속 Afrobeat를  느껴보자.

 

<Rebirth of Afrobeat and going to global>
스마트폰의 시대 이후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기존의 다운로드 방식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바뀌었다. 아프리카 내 인터넷 보급율과 스마트폰 사용율의 증가는 이를 더욱 촉진하며 현지의 다양한 음악을 세계 속으로 퍼트리고 있다. 특히 Afrobeats는 미국의 유명 아티스트들에게도 새로운 앨범 제작에 영감이 되고 있다. Grammy Award 수상자인Alicia Keys가 2016년에 발매한 ‘In Common’ 노래는 Afrobeats 리듬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캐나다 출신 랩퍼인 Drake (드레이크)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Afrobeats 아티스트 Wizkid와의 피쳐링한 곡을 선보였다. ‘One Dance’는 빌보드 차트에서 10주 동안 1위 자리를 지켰다.

Drake – One Dance feat Wizkid & Kyla

 

(앞서 소개한 Fela Kuti가 창시한 Afrobeat와 현재의 Afrobeats 사이 표면적으로 알파벳 S의 차이를 볼수 있다. 두 장르 간의 차이점은 Fela Kuti가 그의 음악에서 보여준 반정부주의 성향의 사회정치 비판 메세지가 사라진 것이다. Afrobeat 리듬 안에 아티스트와 관객들 모두가 음악 자체를 즐기는 캐리비안 느낌의 POP 성격이 더해진 것이 Afrobeats이다.)

Afrobeats 아티스트의 유명세와 영향력은 유명 음반 제작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진다. Wizkid는 Sony Music의 RCA Records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아프리카의 비욘세로 불리우는 Tiwa Savage는 유명 랩퍼 Jay Z의 음반회사에 합류 하였다.

<Wizkid>
Wizkid는 1990년 나이지리아 경제 수도 라고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Ayodeji Ibrahim Belogun이다. 2011년 그의 첫 데뷔 앨범 이후 고향인 나이지리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Wizkid는 성공을 향한 열망이 가득차 있는 소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Drake와의 협업 이전에도 많은 유명 아티스트과 작업을 했었다. Ojuelegba 곡을 통해 국제적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Ojuelegba는 라고스 수도 내 지명으로 그가 어린 시절 자란 동네이다.

Wizkid 대표곡 Ojuelegba를 들어보자

 

<Africa is going to be the new bubble>
OKAYAFRICA 매체에서의 Akon과 Will. I Am 인터뷰를 보면 한 동안 음악 산업에서는 K-POP Bubble이 있었으나 이제는 Afrobeats 등장 이후 새로운 변화가 기대 된다.

“Africa is going to be the new bubble,” will.i.am mentions, comparing the musical explosion to the rise of K-pop a few years ago.

Afrobeat의 창시자인 Fela Kuti의 음악 세계는 그가 미국 LA 있는 동안 James Brown의 funk style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제는 그의 음악에서 태동한 Afrobeats가 세계속 유명 아티스트들의 음반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넘어온 힙합 등 음악을 듣고 자란 그들이 이제는 그들의 음악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가 아닐까?

2016년 7월 뉴욕 Barclay Center 공연장에서는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아프리카 출신의 아티스트들로 이뤄진 ‘One Africa Music Fest’가 열렸다. 요즘 대세로 불리우는 Afrobeats 아티스트인 Wizkid, Davido, Tiwa Savage와 함께 Fela Kuti의 아들인 Seun Kuti도 참여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에는 런던에서 5월에 공연이 계획 되어 있다.

음악 축제로 가득한 한국에서도 언젠가 다양한 아프리카 음악의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열리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http://www.huffingtonpost.kr/hyuk-jung/story_b_4983370

https://theculturetrip.com/africa/nigeria/articles/fela-kuti-s-afrobeat-legacy/

http://edition.cnn.com/2016/05/04/africa/african-music-twitter/

https://www.washingtonpost.com/entertainment/music/is-this-the-year-that-african-music-conquers-the-us/2016/08/17/561c8e5e-60a8-11e6-9d2f-b1a3564181a1_story.html?utm_term=.379dbb3105bb

https://www.ft.com/content/903ea546-7b41-11e6-ae24-f193b105145e

(연재) 아프리카의 가능성: 3) 서부 아프리카의 음악: Afrobeat(s)”에 대한 1개의 생각

  1. 핑백: (연재) 아프리카 101: 나이지리아 Igbo 부족과 Hero 맥주의 연결고리 - JUN SIK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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